제임스 드하트 미국 방위비협상대표가 5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인천공항/연합뉴스
한국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는 미국의 ‘전방위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제임스 드하트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 미국 수석대표가 5일 이례적으로 비공식 방한했다. 이달 안에 서울에서 열릴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 3차 회의와는 별개로 7일까지 방한하는 드하트 대표는 정은보 한국 쪽 수석대표와의 비공식 만찬 외에 국회, 언론, 주한미군 관계자 등을 만날 예정이다.
미국 쪽 협상 대표가 협상과는 별도로 방한해 한국 내 여론을 탐색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미국이 올해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 1조389억원의 거의 6배에 이르는 50억달러(약 6조원)의 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한국 여론의 반감이 커진 가운데, 직접 한국의 동향을 파악하고 미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행보로 보인다.
드하트 대표의 방한 일정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한 일정과도 겹친다. 5일 서울에 도착한 스틸웰 차관보도 한국 당국자들과 만나 방위비 분담금과 지소미아 연장에 대한 미국 쪽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스틸웰 차관보는 이날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한국 정부와의 생산적인 만남을 통해 (한미) 동맹이 이 지역 평화와 안보의 주춧돌이라는 점을 재확인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스틸웰 차관보는 6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세영 외교1차관 등을 면담하고, 이어 청와대 국가안보실 고위관계자와 정석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도 각각 회동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쪽은 4일 타이 방콕에서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1분 환담을 비롯해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설명하고, 미국도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역할을 해줄 것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한-일 갈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적 입장만 밝히면서, 오는 23일 0시 공식 종료되는 지소미아 연장을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26일 도쿄에서 “우리는 한국 쪽에 이 협정(지소미아)에 돌아오라고 독려할 것이다.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마크 내퍼 미 국무부 한국·일본 담당 부차관보, 조지프 영 주일 임시대리대사도 최근 일본 언론을 통해 “지소미아 종료로 기뻐할 건 베이징, 모스크바, 평양이다”, “지소미아 종료는 미국에 악영향”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외교 당국자는 “일본 언론 등을 통해 나온 (미국 고위 당국자의) 발언은 조금 강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은 일본이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취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먼저 철회해야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한국 내에서는 보수 언론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미 동맹 위기설’을 주장하면서 방위비 대폭 인상이나 지소미아 연장 등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와 동맹관리 문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는데, 한국 내에서 오히려 ‘한-미 동맹 위기설’을 확산시키며 한국만 양보하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문제”라며 “미국은 당국자, 전문가들이 방위비나 지소미아와 관련한 한국 내 여론을 이용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 정치권도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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