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한-메콩 정상회의를 두달 여 앞둔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아세안문화원을 방문해 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이달 말 미국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테이블에는 북-미 협상 재개에 대한 한·미의 의견 조율,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와 한-일 갈등,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이 주요 의제로 오를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열리는 74차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22~26일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지난 13일 밝혔다. 두 정상의 만남은 지난 6월29~30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남·북·미 판문점 회동 이후 석달 만이다. 구체적인 회담 일정에 대해서는 한·미가 막판 조율 중이다.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24일 오후(현지시각) 롯데 뉴욕 팰리스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정문에 서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회담에서는 북-미 협상 재개에 대한 한·미 정상의 의견이 깊이 있게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5일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올해 안에는 북-미 협상의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북한도 올해 12월로 시한을 잡고 있어서 더 늦추면 어려워진다”며 “하노이 회담과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 대화를 진전시킬 동력이 없었는데 최근 상황이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말한 ‘동력’은 지난 9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협상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며 발표한 담화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해임 결정 등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최선희 제1부상의 담화가 나온 지 나흘 만인 13일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과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애초 대통령의 유엔총회 참석 여부를 고민하던 상황이었다”며 “(대통령의 참석이 확정된 것은) ‘최선희 담화’의 힘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북-미 협상 진전의 ‘촉진자’ 역할을 위해 문 대통령의 방미를 최종 확정지었다는 얘기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북한이 미국에 지속적으로 요구한 “새로운 계산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의 의미 있는 비핵화 조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경협, 대북 제재 완화 등이 연동돼 있어서, 한국이 모든 상황에서 역할을 안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미 정상은 올해 안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방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눌 것으로 전망된다. 대북 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비난해온 볼턴 보좌관이 물러나는 등 분위기가 나쁘지 않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북·미가 하노이에서 보인 기존 입장이 얼마나 유연해졌는지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문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번주 워싱턴을 방문해 북-미 실무협상을 담당하는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와 만나 북-미 비핵화-상응조처 방안을 논의하고 한-미 정상회담 의제도 정리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지소미아 종료를 둘러싼 한-미 간 이슈와 한-일 갈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한-일 관계에서 미국이 일본 쪽으로 기울어진 듯한 구도를 전환시킬 계기를 만들려는 구상도 이번 방미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이 지난달 22일 한-일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뒤 미국 정부는 “실망했다”(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한다”(미 국무부와 국방부 논평) 등 노골적으로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한-일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톱다운 방식으로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해치려는 취지가 아니라, ‘안보상 이유’를 들어 한국에 수출규제를 강행한 일본 아베 내각의 조처에 대응하려는 취지임을 직접 설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일본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거둬들이면 지소미아 연장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미국의 중재자 역할을 촉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유엔 총회 기간 동안 한-일 정상회담이나 한-미-일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나라와 명시적으로 만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한편, 이르면 이번달 말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분담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는 발언을 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 정부는 방위비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지만, 협상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노지원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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