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7일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미-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 AFP 연합뉴스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나 ‘단계적 협상’ 등에 대한 입장 변화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볼턴식 대북 압박 강경론과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본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면서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고 “협상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로드맵’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이달 초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위반이냐는 거듭된 질문에는 “위반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북한은 핵실험도 하지 않고 장거리 미사일도 발사하지 않았다” “2년간 핵실험이 없었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24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발언했던 것을 25일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트위터로 ‘반박’한 데 이어, 이날 볼턴식 대북 인식에 동의하지 않음을 분명히 재확인한 셈이다. 반면 아베 총리는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날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을 빌려 볼턴 보좌관을 “전쟁 광신자”라고 비난하고 “이런 인간 오작품은 하루빨리 꺼져야 한다”며 볼턴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북한이 원하는 태도 변화는 밝히지 않았지만, 볼턴식 대북 강경론과는 선을 그었다”며 “북한은 최근 미국의 북한 화물선 압류 등의 강경 조처가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은 아니라는 신호를 감지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홍 연구실장은 “최근 미국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볼턴식의 강압적 대북 압박이 북한을 비핵화 쪽으로 이끄는 데 적합하지 않고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경계심이 확산되고 있다”며 “제재만으로는 비핵화 협상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회의론이 확산돼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일본인 납북 피해자들의 가족을 만나고,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제안을 지지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소외돼 있다가 최근 아베-김정은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히며 일본의 존재감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 교착으로 고민 중인 북한이 ‘일본 카드’를 고려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의미있는 북-일 접촉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무역적자 해소를 요구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그는 이날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8월에 양국에 크고 좋은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일본은 미국에서 많은 비즈니스를 하고 있고 우리의 일본 비즈니스도 이를 따라잡아야 한다. 조기에 무역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7월에 있을 일본 참의원 선거까지는 기다리겠지만, 이후에는 무역 협상 압박을 본격화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따라서 지난해 9월부터 양자 무역협정인 상품무역협정(TAG) 체결 협상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첫 방일 때처럼 일본이 미국 무기를 구매하라는 취지의 노골적인 발언도 잊지 않았다. 회담 머리발언에서 “우리는 세계 최강의 무기를 생산하고 있으며 일본은 이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데 이어, 공동기자회견에서도 “일본은 미국에서 F-35 105대를 구입해 세계 최고 공군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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