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 이란 남부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신화 연합뉴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화로 한국 정유업체들이 수입해 오던 이란산 컨덴세이트(초경질유) 수입이 2일 오후 1시(미국시각 2일 0시)를 기해 중단됐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미국의 이란산 원유 수입금지 제재에서 한국과 중국 일본 등 8개국은 6개월의 제재 예외를 인정받았으나 미국이 예외 인정을 거부하고 ‘이란 석유 수출 제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한국도 이란산 컨덴세이트 수입을 중단하게 됐다. 미국이 이란과의 핵합의를 파기하고 대이란 제재를 복원한 이후, 한국은 이란산 원유는 수입하지 않고 석유화학제품의 원료인 컨덴세이트만을 수입해왔다. 한국 정부는 막바지에 미국이 이라크에 적용하는 특별면허(스페셜 라이선스) 방식으로 수입을 계속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상했으나, 미국은 2일 오전 ‘어렵다’는 통보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4월22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한국 등 8개국에 대한 예외를 더이상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 2시간 전 브라이언 훅 미 국무부 이란특별대표는 당시 협상 카운터파트인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에게 전화해 ‘예외 인정이 이뤄지지 못해 미안하다’는 취지로 양해를 구했다. 이에 한국 협상팀은 미국이 이라크에 적용하고 있는 ‘특별 면허’ 방식을 한국에도 적용해달라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고 미국으로 가 협상을 진행했다.
전기가 부족한 이라크는 전체 발전량 18기가와트 가운데 4기가와트를 이란에서 공급 받고 있는데 일부분은 직접 송전을 받고 나머지 상당 부분은 이란산 천연가스를 수입해 발전을 한다. 미국이 이에 대해 스페셜 라이센스를 계속 갱신하는 방식으로 이란산 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한국도 이 방식을 적용해 대체 공급선을 찾기까지 18개월 동안 이란산 컨덴세이트를 계속 수입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윤강현 조정관은 한국 기업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컨덴세이트는 엄밀하게 따지면 미국의 제재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이런 제안을 했고, 훅 대표도 ‘고려해 보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그 결과를 4월30일까지 알려주기로 했지만, 결국 대이란 제재 전면 강화가 시작되기 몇시간 전인 5월2일 아침 ‘이란 석유 수출 제로’ 정책에 따라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한국 정부 당국자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이 이란과의 교역을 계속해나가기 위해 필요한 원화결제시스템 유지 여부도 불확실해 보인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일 기자들에게 “우리는 컨덴세이트 수입은 안되더라도 원화결제시스템은 유지되어야 한다고 했고 일단은 유지되고 있지만 미국이 추가 정보를 요구하고 있어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결제시스템 유지 등 후속조처 마련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란과의 외환거래를 피하기 위해 미국과의 협의를 거쳐 2010년 10월 도입한 원화결제시스템은 이란 중앙은행(CBI)이 IBK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 계좌를 개설해 양국 간 무역대금을 원화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이란으로 달러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는 시스템이다.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로(0)으로 만들겠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제재가 계속 유지될지의 여부는 국제유가 동향과 미국의 조처에 반발하는 중국·인도·터키 등의 움직임이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전세계 국가들의 이란산 원유 수입을 차단하려는 이번조처를 발표한 뒤 대량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 오던 중국과 인도, 터키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미국과의 거래가 전혀 없는 기업과 개인들을 내세워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제재 망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기업과 개인들이 미국 기업, 금융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미국과 대규모 거래를 하기 때문에 이란산 컨덴세이트를 수입할 경우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란산 컨덴세이트는 다른 국가의 컨덴세이트보다 배럴당 최대 6달러 정도 저렴하고 품질도 우수하며 한국 정유업체들의 설비는 이에 최적화되어 있다. 한국 석유화학업계는 이란산 컨덴세이트의 대체 수입선을 찾더라도 원료비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