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24일 오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P-3 초계기가 우리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 인근으로 초저고도 위협비행을 한 사진을 공개했다. 일본 초계기가 고도 약 60m로 비행하면서 대조영함 우현을 통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일본 해상초계기가 우리 함정을 향해 지난 일주일 동안 세차례나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한-일 관계에서 이례적인 사태다.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 구조 아래 묶여 있던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군사적 갈등’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고조된 것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1965년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레이더 갈등부터 초계기 위협비행까지,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의도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우선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 내부의 불만을 결집시키면서, 한국 정부에 대책을 내놓으라고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의 국내 자산 압류에 나서자, 일본 정부는 지난 9일 한일청구권협정의 분쟁 해결 절차에 규정된 정부 간 협의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한테 ‘30일 안에 답을 달라’고 한 상태다.
좀 더 넓게 보면, 아베 정부의 장기적인 전략 재조정이라는 큰 판의 변화가 배경에 있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아베 정부를 비롯한 일본 보수세력들은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을 구실로 일본의 재무장화와 미-일 동맹 강화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미 협상에 힘을 쏟고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한 관심은 낮추자, 아베 정부는 지난해부터 중국·러시아와 화해 노력을 하면서 대신 한국과의 갈등을 이용하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한-일 갈등이 단기간에 풀리기 어렵고, 한-일 갈등이 ‘뉴노멀’이 될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 우파들은 중국 견제와 북한이라는 적을 이용해 냉전적 상황을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봤는데, 구조가 바뀌고 있다”며 “
한국과 일본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기가 쉽지 않은 전환기를 맞고 있어, 한-일 갈등이 뉴노멀 상태로 들어서는 신호가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올해 방위비 예산안은 5조2574억엔(약 54조1885억원)으로 2차대전 이후 사상 최고치다.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 이지스어쇼어(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 같은 고가 미국산 장비 구입에 거액의 예산을 쓰는 데 대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만만찮아, 방위예산의 지속적 증가를 위해서는 주변국 위협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과거사 갈등과 경제·문화 등을 분리해 ‘투트랙’으로 대응하겠다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일본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양기호 교수는 “정부가 한-일 관계를 방치하지 말고 일본 정부와 계속 협의해나가야 하지만, 초계기의 위협적인 비행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며, 수세적인 대응이 오히려 일본의 계속적인 도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한-일 협력의 공간을 확대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남기정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일본을 배제하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동북아의 새로운 안보질서, 비핵지대화 문제에서 일본과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의 정책을 우려하는 일본 시민들과 협력의 공간을 만들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려는 미-일 동맹파를 약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민희 기자, 도쿄/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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