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외교

남북 대결의 ‘1988 청산’…협력 물꼬 튼 ‘2018도약’

등록 2019-01-03 05:00수정 2019-01-03 07:30

2032 남북 공동올림픽의 꿈
문대통령-김위원장 ‘9.19 선언’
남북 공동올림픽개최카드
유치하면 한반도 평화정착
13년짜리 확실한 ‘보증 수표’
대결의 역사 속에서 반면교사
성찰적 협력·공존의 길 걷는다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북과 남, 8천만 겨레의 손을 굳게 잡고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우리 함께 새로운 미래로 나아갑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19일 밤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을 앞에 두고 한 연설의 한 구절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32 여름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유치 협력”(9월 평양공동선언 4조 2항)을 ‘함께 열어갈 새 미래 청사진’의 하나로 제시한 날이다.

70년 분단사 최초로 남쪽 대통령이 북쪽 최고지도자와 15만 인민을 상대로 공개 연설을 한 장소가 5·1경기장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거대한 역설이다. 5·1경기장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고 김일성 주석)와 아버지(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가 제24회 올림픽(88 서울올림픽)에 맞서 “전 국가적, 전 인민적 사업”(김일성 주석)으로 내세운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평양축전)을 치르려고 지은 메인 스타디움이다. ‘서울올림픽-평양축전’이라는 남북 적대·경쟁·배제의 상징적 공간이, 30년 만에 남북협력·공존·평화번영의 야심찬 청사진을 선포하는 장소로 거듭난 셈이다.

남북 정상의 2032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 합의엔 △남북의 공동번영 △북한의 국제사회 진출과 ‘정상·중견국가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촉진 등의 원대한 꿈이 담겨 있다. 이는 ‘서울올림픽-평양축전’이 초래한 결과에 대한 성찰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라는 서울올림픽의 성공의 역설에서 교훈을 얻었다면, 김 위원장은 ‘서울올림픽-평양축전’ 맞대응 이후 북쪽의 외교적 고립과 ‘고난의 행군’이라는 처절한 실패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미 2018 평창겨울올림픽에 ‘김영남·김영철·김여정 특사’와 선수단을 보내 대결이 아닌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할아버지·아버지와 180도 다른 선택이다.

김일성 주석은 88 올림픽을 “조선의 통일 문제와 관련되는 심각한 정치 문제”(<김일성저작집39>, 426쪽)이자 “수수방관할 수 없는 문제”라고 규정했다(<노동신문>, 1987년 11월25일). 북한은 1981년 9월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되자 보이콧→공동개최 추진→평양축전 개최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며 맞대응했다.

북쪽은 서울올림픽을 “사회주의 나라들과 쁠럭불가담나라(비동맹국)들에 접근해 ‘국교’ 및 ‘공식 관계’를 맺어보려는 책동”(<노동신문>, 1981년 12월3일)이자 “미국의 ‘두개의 조선’ 정책의 산물”(김일성 주석)이라며 사회주의권의 보이콧을 호소했다.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앞둔 중국은 86 서울아시안게임 우승으로 대답했고,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 167개 나라 중 160개국이 88 올림픽에 참가했다. 김 주석은 “의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했다.

‘보이콧 호소’가 무산되자 김 주석이 서울-평양 공동개최를 제안했으나, 남쪽 전두환·노태우 정부는 거부했다. 김 주석은 남쪽의 분산개최 제안을 거부하고 평양축전에 매달렸다. 그 역사적 귀결은 남쪽의 중견국 도약과 ‘북방 진출’, 북쪽의 외교적 고립과 ‘고난의 행군’, 그리고 ‘북핵 문제’의 격화다.

김 주석은 1985년 10월4일 “릉라도에 15만석 경기장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라고 교시했고,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는 “(평양) 광복거리와 청춘거리의 체육시설, 15만석의 5월1일경기장, 양각도축구경기장,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광복거리의 교예극장, 평양국제영화회관, 동평양대극장, 청년중앙회관 등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대상 건설에 넣고 힘있게 다그쳐 완성”(<노동신문>, 1989년 8월23일)했다. 이는 김 주석이 1989년 3월 ‘경제부문 책임일군’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평양축전 탓에) 간석지를 건설하는 데 대줄 세멘트가 없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무모했다. “청년학생축전에 돈을 너무 많이 썼다. 그때부터 계획해 생산·배급하던 게 다 깨져버렸다”(<북한사람들이 말하는 북한이야기>, 141~142쪽)거나 “무책임한 미공급(배급 중단)이 묵인·방치되기 시작했다”는 ‘중앙기업소 책임간부’의 회고(격월간 <임진강> 창간호, 47쪽)가 있다. 북한이 1990~98년 9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진 게 실존사회주의권 붕괴 탓만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88 올림픽을 계기로 중견국으로 도약했다. 1981년 올림픽 유치 당시 한국은 사회주의 국가와 아무런 외교 관계가 없고 유엔에도 가입하지 못한 왜소한 분단국가였다. 그런데 올림픽 이후 헝가리(1989년 2월1일)를 시작으로 소련(1990년 9월30일)·중국(1992년 8월24일)과 수교하며 북방 진출의 외교적 교두보와 경제발전의 새 동력을 확보했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올림픽 유치 뒤 조직위원장으로 사회주의권을 동분서주했는데 이는 집권 뒤 북방정책 추진의 밑거름이 됐다. 안으론 1987년 6월항쟁 당시 군부 핵심이 전두환의 무력진압 기도에 반대했는데, ‘1980년 광주항쟁’ 재연의 두려움과 함께 “무력진압하면 올림픽을 치를 수 없다”는 우려가 있었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탈취한 “새 정부의 정통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는 효과(를) 기대”(<서울올림픽사1>, 79쪽)해 전두환 정권이 유치한 올림픽이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방파제 구실을 한 셈이다. 88 올림픽은 한국에 많은 것을 안겨줬지만, 북한 배제 탓에 ‘북핵 문제’로 불리는 ‘북-미 적대 관계 지속’이라는 역사의 저주를 낳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2032 올림픽 공동개최 추진 합의는 남쪽의 성공의 역설과 북쪽의 ‘고난의 행군’에서 길어올린 성찰적 협력·공존·번영의 비전이다. 남북이 2032 올림픽 공동개최에 성공하려면 △남북협력 진전 △‘북핵 문제’ 해결 또는 확실한 해결 전망 △북한의 평화 지향 대외 활동을 포함한 ‘정상국가화’가 이뤄져야 한다.

올림픽헌장 33조 2항은 “대회 7년 전” 개최 도시를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25년 9월까지는 2032 올림픽 개최 도시가 정해져야 한다. 그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유엔의 추가 제재를 불러와 한반도 평화 과정을 역진하게 할 군사적 선택으로 돌아선다면, 2032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는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 정부 고위 관계자가 “2032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카드는 2018년 본격화한 남북협력과 한반도 평화 과정의 궤도 이탈을 방지할 안전장치”라고 짚은 까닭이다. 서울과 평양이 2032 올림픽 동시 개최 도시로 결정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은 중진국 도약과 같은 뜻일 ‘올림픽 개최국’이라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터. 2032 올림픽 공동개최의 꿈은, 남북이 분단·전쟁·적대라는 역사의 저주를 뚫고 교류협력과 공동번영의 꿈을 키워갈 ‘평화의 보증수표’가 될까.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전광훈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힘 하기에 달렸다 1.

윤석열·전광훈이 이끄는 극우 정당, 국힘 하기에 달렸다

윤석열 지지자들, 구치소 앞 ‘떡국 세배’…이준석 “제사상 같아” 2.

윤석열 지지자들, 구치소 앞 ‘떡국 세배’…이준석 “제사상 같아”

이재명 “경호처장 공관, 해병대 사령관 공관으로 복원해야” 3.

이재명 “경호처장 공관, 해병대 사령관 공관으로 복원해야”

윤석열 대검 ‘구름다리 틴팅’ 사건…막무가내 징조 5년 전 그날 4.

윤석열 대검 ‘구름다리 틴팅’ 사건…막무가내 징조 5년 전 그날

이재명, 내일 반도체법 토론회 주재…52시간 예외 ‘빌드업’? 5.

이재명, 내일 반도체법 토론회 주재…52시간 예외 ‘빌드업’?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