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왼쪽 셋째)와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왼쪽 넷째)이 21일 낮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마치고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미국이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북한에 ‘유화 메시지’를 잇달아 발신하고 있다. 앞서 미국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허용하고 북한 여행금지 조처를 일부 완화할 뜻을 시사한 데 이어, 21일에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현대화 사업 착공식도 예정대로 진행하는 데 동의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일 북핵·북한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방한한 비건 특별대표와 2차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워킹그룹에서는(을 통해) 철도 연결사업과 관련 착공식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착공식이 오는 26일 개성 판문역에서 예정된 만큼 행사에 필요한 물품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 제재 위반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조속히 협의가 마무리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외교부는 이날 미국과의 원만한 협의를 기반으로 곧바로 유엔 안보리 등에 제재 면제를 신청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한-미는 △남북 공동유해발굴 사업과 △북쪽에 타미플루를 제공하는 일도 계획대로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특히, ‘9·19 남북군사합의서’에 따라 내년 4월부터 예정된 한국전쟁 전사자의 남북 공동유해발굴 사업엔 각종 발굴 장비의 반출이 필요한데, 이 부분의 제재 면제 적용에 미국이 동의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북 제재를 유예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평가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확대할 뜻을 보이면서, 국제기구를 통한 문재인 정부의 800만달러(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 지원 계획도 구체화될지 눈길을 끌었으나, 양쪽이 세부 논의까지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본부장은 “미국도 인도적 지원 문제 자체는 유엔 제재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이 문제를 리뷰(검토)하기 시작했다”면서 “계속 의논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미국이 대북 독자제재와 유엔 안보리 제재를 완화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면서도 “북한과 약속했던 맥락에서 우리는 미-북 간 신뢰를 쌓기 위한 여러 방안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비핵화까지 제재 완화는 없다’는 기존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따라 정치·외교적 차원의 다양한 상응조처를 제공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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