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부산 누리마루 아펙하우스에서 열린 '2018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북방 환동해 해양수산 비즈니스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부산/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부산의 꿈은 동북아 해양수도다. 유라시아로 이어지는 대륙의 ‘시작점’이자 환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해양의 ‘시작점’으로서 물류와 사람, 문화가 드나드는 관문이 되겠다는 비전이다.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평화가 경제”라는 테제에 맞춤한 구상이다. 부산은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기에 들어서자 이런 지정학적 강점을 현실화하려는 준비 작업으로 분주하다. 남북 경제협력의 문이 활짝 열릴 때 부산이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이자, 중국의 일대일로 및 러시아의 신동방정책과 함께 해양산업 개발의 중심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22일 부산 누리마루 아펙(APEC) 하우스에서 열린 제14회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에서 전문가들은 남과 북은 물론, 대륙(유라시아)과 해양(태평양)을 잇는 항만과 철도, 공항 네트워크 곧 ‘트라이포트’(Tri-Port) 구축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북한 개방에 대비한 항만, 수산업, 관광 사업 개발과 관련한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심포지엄 둘째 날 기조강연을 맡은 이정호 부산발전연구원장은 “한반도 평화시대에 (남북을 잇는) 육로가 개통돼 대륙의 시작과 끝지점으로 부산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신남방시대의 교차점이 부산이다.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다가온)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은 세계 환적 화물 물동량 2위, 전체 화물 물동량 세계 6위의 항만을 보유했다. 150개국 500개 항만과 이어져 있다. 항만 물류 허브로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다. 다만 항만과 연결된 공항이나 철도 등의 복합수송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점이 동아시아의 연결거점인 싱가포르와 북유럽의 연결거점인 네덜란드 로테르담과의 차이다. 물류 허브로서 부산의 한계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발제자인 최치국 부산대 도시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을 포함해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물류 3합”(항만+철도+공항, 트라이포트)을 구축하려면 김해공항의 부족함을 채워줄 공항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항공 물류 확대로 이어지려면 이 지역의 ‘뜨거운 감자’인 김해신공항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부산·울산·경남의 교통망 연결과 도시권 형성, 항만 협력 등 지역 차원의 협력도 경쟁력 제고에 중요하다고 짚었다.
부산이 해양수도로 도약할 방편이자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신경제구상의 축으로 제시한 철도 연결 문제도 주요하게 토론됐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는 “남북 경협이 강화되면 경의선은 중국횡단철도(TCR)와, 동해선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돼 유라시아를 누빌 거대한 철도 물류망의 동북아 끝단 중심 역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며 “철도가 화물 운송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 사업 추진에 합의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6월 정상회담에서는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사업을 위한 공동연구 등 남-북-러 3각 경협을 진전시키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 이후 북방 환동해 해양수산산업의 가능성도 검토됐다. 블라디미르 라자레프 러시아 네벨스코이 국립해양대 부교수는 러시아에서 실시하는 ‘수산물 자원 투자 쿼터제’(허용 어획량 가운데 일정 부분을 투자 쿼터로 설정해 배당)를 소개하며 이를 통한 러시아와의 해양·항만·물류 협력을 제안했다. 박영애 중국 지린대 교수는 “북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중국·몽골·러시아 경제 회랑이 한반도까지 확장돼 중·몽·러·남·북을 아우르는 경제 회랑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중국의 일대일로와 문재인 정부 신경제구상의 정합성이 굉장히 크다”고 말했다.
남북 육·해·공 연결 사업 가운데 뱃길 열기부터 시작하는 게 현실적이라는 제안도 나왔다.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선’ 잇기라면 항구 개방을 통한 뱃길 열기는 ‘점’ 잇기여서 북한의 개방 정도를 고려할 때 현실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진규호 부산항만공사 물류정책실장은 나진에 수산물 가공공장 건설, 원산-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어지는 환동해 크루즈 등 해양관광 개발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이태호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는 북한의 철도·도로의 노후화 등 문제를 들며 남북 경협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철도·도로보다는 항만 해운 루트 개발이 당면해 가장 현실적이며 경제적이라고 주장했다.
황진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본부장은 “대북제재 해제 뒤에 (남북 경협을) 준비하면 이미 늦을 것”이라고 지적하고는, “북한 항만·도로·철도 조사는 제재 해제 없이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제재 해제 전 북한의 교통·물류·해운 항만 실태를 파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부산/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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