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손해배상 판결을 비난하는 고노 다로 외무상 등 일본 정부 지도자들을 겨냥해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며 “깊은 우려”를 드러냈다. 한국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총리는 7일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라는 입장문을 내어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고 밝혔다. 이 총리의 입장 발표는 전날인 6일 강제징용 판결을 “폭거이자 국제 질서에 대한 도전”이라 비난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겨냥한 것으로, 일본 관료들의 공격적 발언을 지켜보지만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풀이된다. 이 총리는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불만을 말할 수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외교적 분쟁으로 몰아가려 함에 따라 나도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현명한 대처를 요망한다”고 했다.
이 총리는 입장문에서 판결은 외교 사안이 아님을 지적하며 “사법부의 판단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조약을 인정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조약의 적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리는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대응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고 했다.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기자들을 만나 “일본 정부가 밖에서 과도하게 우리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한-일 양국간 최근 분위기 등을 고려해 문재인 대통령이 아세안 및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오는 13~18일 싱가포르·파푸아뉴기니를 방문하는 기간 중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별도의 정상회담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고위 관계자는 “지금은 분위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일단 기존 정부 입장과 다른 사법부의 판결이 나왔고,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문 대통령은 이번 순방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리슨 호주 총리와 각각 정상회담을 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여부도 조율하고 있다. 청와대는 또 “미국 쪽 요청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의 면담도 조율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외교부도 6일 밤 “우리 정부는 최근 일본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이 금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하여 문제의 근원은 도외시한채, 우리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계속적으로 행하고 있는데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외교부는 “우리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절제되지 않은 언사로 평가를 내리는 등 과잉대응하고 있는 것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조현 차관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일본대사를 불러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대법 판결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조 차관은 나가미네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고노 다로 외무상 등 일본 정부 고위 당국자의 한국에 대한 비난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지적하고, 이번 판결이 한-일 두 나라의 다른 협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자는 뜻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을 놓고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은 타당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못하다.
사법부의 판단은 정부간 외교의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는 법적 판단만 하는 기관이며, 사법부의 판단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 조약을 인정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 조약의 적용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판단한 것이다. 판결문은 그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최대한 자제하며, 정부 관련부처와 민간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대응방안을 마련하려 노력하고 있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불만을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외교적 분쟁으로 몰아가려 함에 따라 나도 그에 대한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현명한 대처를 요망한다. 한국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한국정부는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란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2018. 11. 7.
대한민국 국무총리 이낙연
노지원 김보협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