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19일(현지시각)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열리고 있다. 안보리는 22일 유엔본부에서 대북 석유 정제품 공급량을 현행 연간 200만 배럴에서 50만 배럴로 줄이는 내용 등을 담은 새 대북 제재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해외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을 12개월 안에 귀환시키는 내용도 담겼다. 이 결의안 초안은 미국이 마련했다. 뉴욕/신화 연합뉴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정제유 공급 총량을 대폭 줄이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새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을 마련하기까지는 3주 이상 걸렸다. 지난 9월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에 대응해 안보리 결의 2375호가 채택되는 데 채 열흘도 걸리지 않았던 것에 견주면 결과물이 상당히 늦게 나온 셈이다. 제재 수위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강 대 강’ 대치를 거듭하다, 대북 원유공급 전면 중단 대신 정유제품 공급량을 대폭 줄이는 등의 절충을 통한 봉합을 선택하기까지 양쪽이 상당한 곡절과 진통을 거듭한 탓이다.
북한의 ‘화성-15형’ 발사 다음날인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중국을 겨냥해 “수출입을 포함해 북한 정권과 모든 교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헤일리 대사는 중국이 대북 원유공급 차단에 나서지 않으면 중국 정유기업에 대해 독자제재를 추진할 뜻까지 내비쳤다. 당시 회의에선 안보리 언론성명이나 의장성명조차 내놓지 못할 만큼 미-중이 대립했다.
이후 미국은 중국에 △대북 석유공급 완전 중단 △북한 노동자 전원 추방 △해상에서 북한 선박 차단 참여 등을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미국은 중국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중국석유화공)에 대한 제재 △중국 대형은행에 대한 제재 등을 취하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제재 수위와 미-중 무역 이슈를 둘러싸고 갈등이 격화하자, 중국은 정쩌광 외교부 부부장(차관급)을 지난 6~8일 워싱턴으로 급파해 미국의 ‘진의’를 살폈다. 데이비드 맬패스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중국 쪽에 사전 통보나 귀띔 없이 지난달 30일 <파이낸셜 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미-중) ‘포괄적 경제대화’를 재개할 계획이 없다”고 일방적으로 초강수를 둔 것도 중국을 긴장시켰다.
정 부부장의 워싱턴 방문 과정에서도 양쪽은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중국에 대한 독자제재 강행 의사를 밝혔고, 이에 맞서 중국도 독자제재에 대한 보복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경고했다”고 전했다.
양쪽의 ‘강 대 강’ 대치는 지난주부터 타협점을 찾는 쪽으로 기류가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밑교섭을 통해 미국은 대북 원유공급 중단 요구를 철회하고 중국의 대형 기업·은행에 대한 독자제재를 하지 않는 대신, 중국은 새 유엔 제재 결의안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복수의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원유공급 중단 요구는 대북 정제유 공급 총량을 연간 200만배럴에서 50만배럴로 대폭 줄이는 선에서 타협됐고, 북한 해외 노동자 추방은 ‘12개월’이란 단계적 시한을 둔 것으로 알려졌다.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 차단 참여’도 기존 제재와 마찬가지로 ‘의무’가 아닌 ‘재량’에 맡기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쪽은 ‘독자제재 압박이 중국에 먹혔다’고 보는 분위기고, 중국 쪽은 ‘독자제재를 강행하면 미국에 보복하겠다’는 강한 되치기로 대북 원유공급 중단을 막았다고 자평하는 모양새다.
정부 당국자는 정제유 제품 공급을 대폭 줄인 결의안이 통과되면 “북한 경제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당국자는 연간 대북 원유공급량을 400만배럴로 명시적으로 제한한 것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북한을 압박해 대화로 나오게 하는 데 목표가 있다면 지난 2375호에서 원유에 대해서 ‘현상 유지’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방식이었다”며 “제대로 상한선을 정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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