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 중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둘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맨 오른쪽),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왼쪽) 등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9월 초 7박8일에 걸쳐 다자 정상외교에 나선다. 청와대의 18일 발표를 보면, 박 대통령은 △제2차 동방경제포럼 및 한국·러시아 정상회담(9월2~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제11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9월4~5일, 중국 항저우) △제19차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3(한국·중국·일본) 정상회의와 제11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및 한·라오스 정상회담(9월7~9일 라오스 비엔티안)을 소화할 예정이다.
관례대로라면, 박 대통령의 이번 정상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북핵문제 대응방안 협의여야 한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 발표(7월8일) 이후 격화하는 한-중 갈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한·일 정부의 12·28 합의를 둘러싼 안팎의 논란이 끊이지 않아서다.
더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월25일 ‘세계전략안정을 강화하는 것에 관한 공동성명’을 통해 “역외 세력이 억측으로 만들어낸 이유를 빌미로 유럽에는 ‘지상 기반 이지스(Aegis) 미사일방어체계’를, 아태지역에는 사드를 이미 배치했거나 배치를 계획하고 있다. 이는 중·러를 포함한 역내 국가들의 전략안전이익을 크게 해친다. 중·러는 이를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번 정상외교 일정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한·중 및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 사드와 12·28 합의 관련 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어야 할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박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사드 문제로 정면충돌할까? 결론을 당겨 말하면, 사드 논란이 한·러 정상회담을 지배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 뒤 러시아를 방문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 방한의 답방 형식이다. 두 정상은 모처럼의 양자회담에서 사드 문제로 충돌하기보다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과 푸틴 대통령의 신동방정책의 접점을 넓히는 쪽으로 논의를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양자 경제협력, 좀더 구체적으로는 북한 4차 핵실험 뒤 박근혜 정부의 독자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중단된 남·북·러 3각 협력사업인 ‘나진·하산 복합물류 프로젝트’ 재가동 여부가 관심사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접점을 찾기 어려운 난제다.
둘째, 박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만날까?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계기에 한·중 정상회담 성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건 사드 논란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위권적 조처’라며 사드 배치를 강행할 의지를 거듭 밝혔고, 시진핑 주석도 사드 반대를 공언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양자 정상회담이 이뤄지면 사드 문제로 정면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안 만나려니, 동맹 다음으로 격이 높은 ‘한·중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를 고려할 때 모양이 너무 이상하다. 양국 외교당국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배경이다. 리바오둥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15일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관련 설명회에서 ‘사드 갈등으로 한·중,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해당국과 소통을 하고 있다. 소식이 있으면 조속히 통보해주겠다”고 답했다. 회담 가능성을 열여둔 셈이다. 하지만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19일 “양자 정상회담 일정은 결정된 게 없다”며 “협의 여부에 대해선 ‘노코멘트’”라고 극도로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두 정상이 최종적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셋째, 박 대통령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날까? 아베 총리도 박 대통령처럼 세 다자 정상회의에 모두 참석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박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베 총리를 만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말했다. 한·중이 사드 문제로 갈등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항저우에서 아베 총리와 양자 정상회담을 열어 한·일 협력 모양새를 취하는 건 중국에 너무 도발적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결국 두 정상이 만난다면 라오스 비엔티안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두 정상이 이미 집행 단계에 들어선 12·28 합의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나눌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훈 통일외교팀장 nomad@hani.co.kr[디스팩트 시즌3#16_우경화하는 일본, 일왕 퇴위가 던진 의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