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일보>가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사드 배치 결정을 비판한 건 거의 (최후)통첩 수준이다. 한-중 양국의 공식 외교 경로로는 대화가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전직 정부 고위 인사의 한탄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박 대통령이 2일 국무회의에서 “사드 배치는 바뀔 수 없는 문제”라고 못을 박자, 3일치 사설에서 “한국의 지도자는 고집스레 자국의 안위를 미국 사드 체계와 함께 묶어놓고는 지역 안정을 파괴하고 공연히 주변 대국(중국·러시아)의 안보 이익을 훼손하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한테 직격탄을 날렸다. “중국 공산당은 중국을 영도”(중국 헌법 서언)한다. 따라서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 사설은 중국 정부·당의 공식 견해라고 해도 무방하다.
전직 정부 고위 인사는 “일부 사람들이 최근 중국 쪽의 반응을 ‘협박’이라고 하는데, 협박에는 말에 그치는 게 있고 행동이 따르는 게 있다. 그런데 중국의 최근 협박은 행동이 따를 협박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적절한 조처가 없다면, 중국 정부·공산당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이다.
다만 중국 쪽의 ‘행동’이 한-중 양국 관계를 파탄시킬 ‘전면전’으로 직행하지는 않을 듯하다. 중국 처지에선 ‘사드 주한미군 배치’를 반드시 저지해야 하지만, 한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완전히 편입되는 불상사도 막아야 한다. 상충하는 두개의 전략 목표, 난해한 과제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중국 쪽이 ‘사드 반대’ 목소리를 한껏 돋우면서도, ‘사드 저지 행동’엔 조심스러운 배경이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가 “아직 사드가 배치되지 않았다. 중국이 정부 차원의 공식 대응 행동에 나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짐짓 여유를 부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중국 쪽은 일단 정부 차원의 공식 ‘경제제재’ 등에 앞서 한국 사회의 여론을 격동시켜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 결정을 재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려는 듯하다. 이는 중국 쪽이 최근 취하고 있는 비공식 압박 조처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한류 스타의 활동 제한, 한류 콘텐츠 신규 승인 및 제작 협력 중단, 한국인 상대 상용복수비자 발급 대행기관 등록 취소 등이 대표적이다. 한류와 비자 발급 제한 조처에 대해 중국 정부는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사드 대응 제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7월25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에서 “한국 쪽의 (사드 배치 결정) 행위는 호상(상호) 신뢰의 기초에 해를 끼쳤다”고 불만을 토로하며 “쌍방의 인적 교류는 이미 천만 시대에 올랐다”고 강조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천만 시대’의 상징이 한류와 비자다. 한류와 비자 발급은 일부 제한이 가해지더라도 한-중 경제관계에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대중적 파급력은 엄청나다. 중국의 ‘변죽 울리기식 1단계 여론전’이라 할 만하다.
1단계 여론전이 먹히지 않으면 중국은 ‘사드 배치 저지’를 포기할까? 박근혜 정부는 그러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사드 배치 결정 발표 이후 중국 정부가 밝혀온 메시지를 압축하면 “중국의 안보 우려를 한국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잖은 표현엔, 한국이 중국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지 않으면 중국도 한국의 안보 우려를 이해하지 않겠다는 살벌한 외교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국의 안보에는 당연히 ‘경제안보’도 포함된다. 한-중 ‘경제전쟁’이 벌어지면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한국 쪽의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을 실명 비판한 <인민일보>의 사설을 예사롭게 받아넘길 수 없는 건, ‘사드 저지’라는 전략 목표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당의 의지가 실린 ‘최후 통첩’일 수 있어서다. <인민일보>는 4일 사설에선 “중·러는 동북아에 미국의 새 미사일방어(MD) 거점을 마련하는 데 반대한다”며 “중·러는 미국·한국이 예측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보복 조처로 사드에 대응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일방적이고 무제한적으로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은 지역 안전과 안정을 위협한다”며 ‘사드 저지’ 공조를 공언한 터다.
박 대통령의 “사드를 기존 입지로 확정된 성산포대 대신 성주군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발언이, 마주 달리는 폭주 기관차 같은 한-중 양국의 ‘사드 대치’에 숨통을 틔워주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이제훈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