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외무 한밤 회동 윤병세 외교장관(왼쪽)이 25일 새벽(한국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중국과의 양자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을 만나고 있다. 비엔티안/연합뉴스
왕이 “한국 행위 상호 신뢰 해쳐, 유감” 사드 배치 ‘시정’ 공개 압박
윤병세 “사드 배치 결정은 책임있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 맞서
윤병세 “사드 배치 결정은 책임있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 맞서
한국·미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주한미군 배치 결정 발표 이후 한국-중국 관계가 갈수록 태산이다. 한-중 외교장관은 24일(현지시각) 밤 10시께,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24~26일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 계기에 양자 회담을 벌여 ‘사드 주한미군 배치’ 문제를 두고 절충을 시도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격한 파열음을 냈다. 이날 회담은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 발표(8일) 이후 한-중 양국 정부의 첫 고위 당국자 회담이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의 갈등이, 한-중 양국 관계를 집어삼킬 ‘태풍의 눈’이 될 조짐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24일 늦은 밤 숙소인 ‘돈 찬 팰리스’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최근 한국 쪽의 행위는 쌍방의 호상(상호) 신뢰에 해를 끼쳤다. 유감스럽다”라며 “한국 쪽이 우리 관계를 수호하기 위해 어떤 실질적인 행동을 취할지 들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왕이 부장의 이런 발언은 ‘사드 주한미군 배치’ 발표에 대해 반대 의견을 밝히는 데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시정’, 사드 배치 추진 중단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왕이 부장은 “쌍방의 인적 교류는 이미 1천만명 시대에 올랐다”며 “이런 협력은 두 나라 인민한테 복리를 가져다 주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복리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드 주한미군 배치’ 논란이 한-중 양국 협력을 해쳐선 안 된다는 원론적 언급일 수 있지만, 듣기에 따라선 ‘한국이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한해 1000만명을 넘어선 양국의 인적 교류를 비롯해 경제협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엄포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한-중 양국의 인적 교류는 지난해 1042만명인데, 이 가운데 598만명(57%)이 방한 중국인이다.
왕이 부장은 “우리는 동료이므로 의사소통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오늘(24일 윤병세) 장관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장관의 의견을 들어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중 외교장관회담이 중국이 아닌 한국 쪽의 제안으로 이뤄졌다는 얘기다.
왕이 부장의 이런 외교적 수사를 걷어낸 날선 압박에 윤병세 장관은 “양국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여러 도전이 있을 수 있다. 이런 도전은 극복하지 못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윤 장관도 절충에 필요한 ‘양보’를 시사하기보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통해 거듭 강조해온 정부의 공식 견해를 녹음기 돌리듯 반복했다. 윤 장관은 왕이 부장한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며 “사드 배치 결정은 자위적 방어적 조처로서 책임있는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고 25일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이런 ‘강 대 강’ 대립 탓에 윤 장관과 왕이 부장의 1시간 가까운 회담은 ‘사드 배치 관련 논의를 했다’는 사실을 빼고는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 당국자는 “구체적 진전이나 성과보다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에 양국 외교장관 간에 소통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소통을 계속하겠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한-중 외교장관이 ‘사드 주한미군 배치’ 문제에서 이견 해소에 필요한 의미있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외교적 표현이다.
이에 앞서 24일 왕이 부장은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에 온 뒤 숙소도 같은 곳(돈 찬 팰리스)에 잡는 등 이례적 ‘동반 행보’를 보였다. 북-중 양국은 지난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 땐 당시 냉랭한 양국관계 탓에 외교장관회담을 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리용호-왕이 회담이 25일 중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왕이 부장은 24일 밤 ‘북한과 양자회담을 할 계획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가능한 일(it’s possible)”이라고 답했다. 중국 쪽의 이런 눈에 두드러진 ‘북한 껴안기’는, 남중국해 분쟁과 관련한 미국·일본의 중국 압박, ‘사드 주한미군 배치 결정’이라는 한·미 양국의 공세적 행보에 대한 ‘답변’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미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온 북한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대북제재 국제공조 전선에 균열이 불가피함을 뜻하는 것이자 동북아 역내 구도가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윤병세 장관은 25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및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과 각각 한-미 및 한-일 양자 외교장관회담을 한다. 비엔티안(라오스)/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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