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미 싱크탱크 세미나서
“비핵화·평화협정 병행” 역설
안보리 고강도 제재 동의해준만큼
미국에 ‘협상 테이블 마련’ 메시지
서울 온 러셀 ‘사드 유보’ 협의한 듯
우다웨이도 28일 한국 찾아
강경몰이 매달리고 있는 정부에
6자회담 재개 방안 탐색 가능성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5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에게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회담·담판 이후 미-중 양국 정부의 행보가 분주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에 합의한 데 이어, 제재와 함께 대화·협상 모색 등 한반도 정세 관리 쪽으로 양국 정부의 시선이 이동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북한의 4차 핵실험·로켓발사에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박근혜 정부와 결이 다른 움직임이다.
미국의 서맨사 파워 유엔 대사가 25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전체회의 직후 새 결의안의 핵심 내용을 언론에 공개할 즈음, 왕이 부장은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세미나에서 ‘비핵화-평화협정 동시·병행 추진’ 방안(왕이 이니셔티브)을 거듭 강조했다. 왕이 부장은 안보리의 새 결의안 채택이 임박했음을 상기시키고는 “동시에 (북한의) 핵문제에 관한 유일한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공해주는 평화협정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핵화가 없다면, 평화협정도 없다. 평화협정이 없다면, 다시 말해 북한의 우려를 포함해 당사국들의 정당한 우려를 해소할 수 없다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없다”고 짚었다. 그는 “우리는 비핵화와 당사국들의 우려를 해소하는 것을 균형있게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왕이 부장의 이런 움직임엔 두가지 포석이 깔린 듯하다. 첫째, 안보리의 대북 제재 수위를 미국이 만족할 만큼 높였으니, 이제 평화협정을 미국 정부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압박의 성격이 담긴 듯하다. 둘째, 평화협정에 부정적인 워싱턴 외교가에서 직접 ‘담론 경쟁’을 하겠다는 공세적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류제이 유엔 주재 중국대사가 25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에 둘러싸여 질문을 받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방한(26~27일)·방중(27일~3월1일)하고, 6자회담 의장인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28일 방한하는 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두 일정 모두 미-중 외무장관 회담 뒤 급히 마련된 것이다. 미-중이 외무장관 회담 결과를 토대로 실무 협의에 나서는 한편으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반도 정세 안정 및 향후 대응 방안을 협의하려는 ‘조율된 행보’로 풀이된다.
미 국무부는 러셀 차관보가 방한해 “지역 문제를 협의”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의 한반도 배치의 유보 여부와 관련한 협의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해 해리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이 25일 미 국방부 브리핑에서 “우리는 사드 배치를 합의하지 않았다”고 말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만 러셀 차관보는 26일 오후 서울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을 만난 뒤 기자들한테 “사드는 협상 카드(bargaining chip)가 아니다”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러셀 차관보는 ‘왕이 이니셔티브’와 관련해서도 협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 대표도 28일 서울에서 6자회담 한국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을 만나 ‘왕이 이니셔티브’의 취지를 설명하고, 6자회담 재개 방안을 탐색할 전망이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왼쪽)와 김홍균 외교부 차관보가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중 양국의 행보와 관련해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대표(전 통일부 장관)는 26일 “중국이 안보리 제재 수위를 높이는 대신 미국은 사드, 비핵화-평화협정 추진, 6자회담 재개 등과 관련해 반대급부를 내놨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대 커튼 뒤를 살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 정부가 대화를 염두에 둔 (대북) 제재 실행 쪽으로 중국과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yy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