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여당 원내대표 ‘핵무장론’ 파문
‘핵무장’ 공식제기, 무엇이 문제인가
‘핵무장’ 공식제기, 무엇이 문제인가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15일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자위권 차원의 ‘핵·미사일’ 보유를 주장한 것은, 국내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제기돼온 ‘핵무장론’이 제도 정치권에서 공식 제기됐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집권당 원내대표의 공식 국회 연설이라 나라 안팎에 커다란 파문을 몰아올 가능성이 크다. ‘핵무장론’은 국제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일뿐더러, 경제·외교안보적 측면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힐 자해적이고 무모한 주장이다. 국제정치학자인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원유철 대표의 연설은 우리도 북한의 길을 걷겠다는 얘기”라며 “핵무장을 추구하면 북한과 마찬가지로 한국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 왕따가 되고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①한-미 동맹 파기할 건가?
핵연료 농축·재처리, 한-미 원자력협정 깨야
‘핵무장’을 하려면 무기급 우라늄 농축(90%)을 하거나 플루토늄을 재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 무기급 농축은커녕 평화적 목적의 독자적인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도 금지돼 있다. 유일 동맹국인 미국 정부와 맺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그렇게 명시돼 있다. 미국 정부가 강하게 요구해 한국 정부가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미국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때 꼭 얻어내려 한 ‘파이로프로세싱’(핵연료 재처리 기술)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지못해 첫 단계 연구(전해환원)만 허용했다. 한국은 5년 가까운 협상 끝에 42년 만에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에서도 평화적 목적의 농축·재처리를 미국한테서 허용받지 못한 셈이다. 더욱이 어니스트 모니즈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해 6월15일 워싱턴에서 열린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개정 원자력협정 서명식 때 “우리는 비핵화라는 목표를 강하게 옹호한다”고 밝히는 방식으로 한국의 농축·재처리 반대 의사를 거듭 강조했다. 개정 한·미 원자력협정은 지난해 11월25일 발효됐다. 핵무장을 하려면 한·미 원자력협정 파기가 불가피하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한·미 원자력협정 파기는 곧 한·미 동맹을 파기하겠다는 얘기”라며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나 알고 떠드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②국제사회 왕따가 되려는가? ‘NPT 위반’…유엔 제재로 경제·외교 직격타 한국을 포함해 189개국이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 보유·개발·이전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 조약에 따라 핵무기 보유가 국제법적으로 용인된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뿐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도 실질적 핵보유국이지만, 이들 세 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적이 없다. 아울러 미·중 등 핵보유국이 이들 세 나라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거듭 제재 결의를 내놓는 북한과 처지가 다르다. 북한은 1985년 12월12일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으나 북-미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1993년 3월12일 조약 탈퇴를 선언하고는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75년 4월23일 86번째 핵확산금지조약 정식 비준국이 됐다.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처협정(세이프가드)을 맺어 핵연료의 군사적 전용 여부와 관련한 사찰을 받아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보유를 엄격히 금지하지만 평화적 목적의 농축·재처리는 주권적 권리로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 권리도 한·미 원자력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포기했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핵물질을 군사적으로 전용한 사실이 확인되면, 유엔 안보리는 북한한테 그러듯이 한국을 대상으로 제재 결의를 채택해 경제·외교·군사적 제재를 가하게 된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는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99.5%(2015년 한국은행 기준)에 이르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현재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엔은 1968년 안보리 결의 255호를 채택해 비확산체제의 유지·강화를 위해 핵비보유국이 핵보유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유엔의 개입·보호를 약속했고, 5대 핵보유국도 1978년 유엔 군축특별총회에서 핵비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전자를 ‘적극적 안전보장’, 후자를 ‘소극적 안전보장’이라 부른다.
③장기 정전사태 견딜 수 있나 발전용 핵도 봉쇄…상시적 ‘블랙아웃’ 불가피 한국은 에너지 국외 의존도가 96~97% 수준인 에너지 약소국이다. 23개의 핵발전소를 이용한 핵발전 비중이 30%(<2015년 원자력백서>)에 이른다. 핵에너지 의존도 세계 4위, 전력 소비량 세계 10위인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에너지 약소국+다소비국’,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은 한국 사회에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핵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을 100% 수입한다. 프랑스에서 원광을 사서, 미국에서 저농축으로 처리해 핵발전소에서 사용한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핵발전소용 저농축 우라늄의 수입이 불가능하다.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처협정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라늄은 저농축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핵무기 개발에 쓰일 고농축 우라늄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라 국제시장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일반 상품이 아니다. 북한·인도·파키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개발 국가가 예외 없이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인 이유다. 저농축 우라늄의 수입이 불가능해지면, 국내 에너지 소비의 30%를 떠받치는 핵발전소가 일제히 멈추게 된다. 한여름 일시적인 대량 정전사태(블랙아웃)만으로도 난리가 나는 한국 사회가 만성적 ‘블랙아웃’ 상황을 견뎌야 한다. 핵무장을 하겠다는 이들이 ‘반핵’ 철학에 따라 핵발전을 포기하고 생태에너지 개발에 힘을 쓸 것 같지도 않다.
④‘핵개발’의 어두운 그림자 2004년 ‘핵물질 파동’…외교총력전 끝 무마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국이 ‘핵물질 사건’에 휘말려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을 뻔한 적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추가의정서에 따른 사찰 준비 과정에서 2000년 초 대전시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실험실에서 극소량(0.2g)의 무기급 고농축(90%) 실험을 한 사실과 서울시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자리에서 1982년에 미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돼서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발칵 뒤집혔고, 조지 부시 당시 미국 행정부를 중심으로 영국·프랑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한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이 오히려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 특히 존 볼턴 당시 미 국무부 군축차관은 한국의 ‘핵물질 사건’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처협정의 중대 위반이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외교 역량을 쏟아붓는 총력전 끝에 그해 11월26일 “한국 정부의 시정 조처와 협력을 환영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 ‘의장결론’으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 방미해 볼턴을 만나고 외교통상부·통일부·과학기술부 장관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발표하는 등 ‘결백’을 주장해야 했다. 미국 등의 이런 강경한 대응엔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전과’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국제정치학자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자주·자위를 내세워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에 앞서 미국에 반납한 전시작전통제권부터 찾아오는 게 순리”라며 “핵무장론은 미국이 반대할뿐더러 중국 압박용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짚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사드 배치에 이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까지 주장한다면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중국은 이를 한국이 미국의 앞잡이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관련 영상] ‘북풍’보다 무서운 ‘공천풍’ [말풍선 브리핑 2016. 02. 15]
②국제사회 왕따가 되려는가? ‘NPT 위반’…유엔 제재로 경제·외교 직격타 한국을 포함해 189개국이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 보유·개발·이전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이 조약에 따라 핵무기 보유가 국제법적으로 용인된 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뿐이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도 실질적 핵보유국이지만, 이들 세 나라는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적이 없다. 아울러 미·중 등 핵보유국이 이들 세 나라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가 거듭 제재 결의를 내놓는 북한과 처지가 다르다. 북한은 1985년 12월12일 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했으나 북-미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던 1993년 3월12일 조약 탈퇴를 선언하고는 지금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박정희 정부 때인 1975년 4월23일 86번째 핵확산금지조약 정식 비준국이 됐다. 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조처협정(세이프가드)을 맺어 핵연료의 군사적 전용 여부와 관련한 사찰을 받아야 한다. 핵확산금지조약은 핵보유를 엄격히 금지하지만 평화적 목적의 농축·재처리는 주권적 권리로 인정한다. 하지만 한국은 이 권리도 한·미 원자력협정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포기했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핵확산금지조약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핵물질을 군사적으로 전용한 사실이 확인되면, 유엔 안보리는 북한한테 그러듯이 한국을 대상으로 제재 결의를 채택해 경제·외교·군사적 제재를 가하게 된다. 한국이 국제사회의 ‘왕따’가 되는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99.5%(2015년 한국은행 기준)에 이르는 한국이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 현재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하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엔은 1968년 안보리 결의 255호를 채택해 비확산체제의 유지·강화를 위해 핵비보유국이 핵보유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유엔의 개입·보호를 약속했고, 5대 핵보유국도 1978년 유엔 군축특별총회에서 핵비보유국을 핵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전자를 ‘적극적 안전보장’, 후자를 ‘소극적 안전보장’이라 부른다.
③장기 정전사태 견딜 수 있나 발전용 핵도 봉쇄…상시적 ‘블랙아웃’ 불가피 한국은 에너지 국외 의존도가 96~97% 수준인 에너지 약소국이다. 23개의 핵발전소를 이용한 핵발전 비중이 30%(<2015년 원자력백서>)에 이른다. 핵에너지 의존도 세계 4위, 전력 소비량 세계 10위인 에너지 다소비 국가다. ‘에너지 약소국+다소비국’, 이게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핵무장은 한국 사회에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핵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우라늄을 100% 수입한다. 프랑스에서 원광을 사서, 미국에서 저농축으로 처리해 핵발전소에서 사용한다.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면 핵발전소용 저농축 우라늄의 수입이 불가능하다.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처협정 위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라늄은 저농축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핵무기 개발에 쓰일 고농축 우라늄으로 전용될 수 있는 전략물자라 국제시장이 엄격히 통제돼 있다. 돈이 있다고 살 수 있는 일반 상품이 아니다. 북한·인도·파키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개발 국가가 예외 없이 우라늄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인 이유다. 저농축 우라늄의 수입이 불가능해지면, 국내 에너지 소비의 30%를 떠받치는 핵발전소가 일제히 멈추게 된다. 한여름 일시적인 대량 정전사태(블랙아웃)만으로도 난리가 나는 한국 사회가 만성적 ‘블랙아웃’ 상황을 견뎌야 한다. 핵무장을 하겠다는 이들이 ‘반핵’ 철학에 따라 핵발전을 포기하고 생태에너지 개발에 힘을 쓸 것 같지도 않다.
④‘핵개발’의 어두운 그림자 2004년 ‘핵물질 파동’…외교총력전 끝 무마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한국이 ‘핵물질 사건’에 휘말려 미국과 유엔 안보리의 제재를 받을 뻔한 적이 있다. 국제원자력기구 추가의정서에 따른 사찰 준비 과정에서 2000년 초 대전시 대덕연구단지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실험실에서 극소량(0.2g)의 무기급 고농축(90%) 실험을 한 사실과 서울시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자리에서 1982년에 미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을 한 사실이 확인돼서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발칵 뒤집혔고, 조지 부시 당시 미국 행정부를 중심으로 영국·프랑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한국의 전통적 우방국들이 오히려 강경 대응을 주도했다. 특히 존 볼턴 당시 미 국무부 군축차관은 한국의 ‘핵물질 사건’이 국제원자력기구 핵안전조처협정의 중대 위반이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중심으로 외교 역량을 쏟아붓는 총력전 끝에 그해 11월26일 “한국 정부의 시정 조처와 협력을 환영한다”는 국제원자력기구 ‘의장결론’으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이 방미해 볼턴을 만나고 외교통상부·통일부·과학기술부 장관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4원칙’을 발표하는 등 ‘결백’을 주장해야 했다. 미국 등의 이런 강경한 대응엔 1970년대 후반 박정희 정부의 핵개발 ‘전과’가 영향을 끼쳤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국제정치학자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자주·자위를 내세워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그에 앞서 미국에 반납한 전시작전통제권부터 찾아오는 게 순리”라며 “핵무장론은 미국이 반대할뿐더러 중국 압박용으로도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짚었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한국이 사드 배치에 이어 미국의 전술핵무기 재배치까지 주장한다면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중국은 이를 한국이 미국의 앞잡이가 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관련 영상] ‘북풍’보다 무서운 ‘공천풍’ [말풍선 브리핑 2016.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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