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 지난해 12월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대현문화공원에서 참석자들이 소녀상의 손을 잡은 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이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사과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대학생들이 모은 기금으로 세웠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수교 50돌 새 한-일관계 탐색] (4) 한-일 대학생들이 말하다
국민대-쓰다주쿠대 학생들 설문조사
국민대-쓰다주쿠대 학생들 설문조사
<한겨레>는 지난달 26~27일 서울의 국민대와 도쿄의 쓰다주쿠대에서 각각 이원덕 교수, 박정진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한-일 관계 관련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했다. 정밀한 여론조사는 아니지만, 수업을 통해 상대국을 배우고 있는, 그래서 일반인보다는 상대국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두 나라 대학생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통해 한-일 관계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해본다.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지금의 한·일 대학생들은 상대국 대중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고 자란 세대다. 한국에선 1990년대에 소개된 <짱구는 못말려> 같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이 ‘왜색 문화’라는 폄하 없이 합법적으로 소비됐고, 일본에선 2003년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몰아친 ‘한류 붐’이 영화·대중음악계를 휩쓸었다. 국민대·쓰다주쿠대에서 만난 학생들 역시 서로의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으로 대중문화의 영향을 으뜸으로 꼽았다. 한국 쪽은 57.7%가 ‘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일본 영화나 음악 등에 관심이 있었다’고 답했고, 일본 쪽도 50.0%가 같은 답변을 했다.
그러나 저마다 처음 상대국에 관심을 갖게 된 시점에 견줘, 대체로 현재의 한-일 관계가 나빠졌다는 평가를 내렸다. 한국 학생들은 이 수치가 84.6%였고, 일본 학생들도 70.0%에 이르렀다. 관계 악화의 책임이 한국과 일본, 어느 한쪽이 아니라 ‘양쪽 모두에 있다’는 데에도 견해는 일치했다(한국 90.9%, 일본 80.0% 응답).
양국 관계 악화의 원인에서 일본의 가장 큰 책임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아베 정권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사실상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한국 85.7%, 일본 66.7%로 가장 많았다. 한 국민대생은 “아베 신조 총리는 미-일 관계만 좋으면, 주변국 관계는 아무래도 다 좋다는 식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쓰다주쿠대생도 “아베 총리가 총리로 있는 이상 일-한 관계는 좋아지지 않는다. 일본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도 않고, 투표율도 낮고, 일-한 관계가 중요한 것도 아니다”라고 아베 총리에게 날선 비판을 가했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등을 통해 군사적 역할 확대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라거나 ‘일본의 혐한 시위 때문’이라는 등의 답변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다. 한 국민대생은 “일본의 재무장은 북한의 위협을 상정하고 진행되는 건데, 남북관계가 나빠지다 보니 그에 대한 반감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문화 영향으로 상대국에 관심
‘관계 악화, 양쪽 모두 책임’ 공감 일본쪽 원인 ‘과거사 사과 거부’ 첫손
한국쪽 원인 ‘한-일 정상회담 거부’
아베-박 대통령 외교에 비판적
‘MB 독도방문’도 부정적 평가 높아
‘식민지배 사과’ 일본 55%가 “부족” 혐한·반일 감정 4명중 3명 경험
관계개선책 ‘교류·대화 확대’ 꼽아
상대국 방문 뒤 “인상 좋아졌다” 한국 쪽의 가장 큰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일본 쪽과 달리 의견이 어느 한쪽으로 모아지진 않았다. 국민대생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의 한-일 정상회담 거부 때문’과 ‘한국의 끊임없는 과거사 사과 요구 때문’이라는 응답이 각각 20%였다. 반면, 쓰다주쿠대 학생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의 한-일 정상회담 거부’(46.7%)가 ‘과거사 사과 요구’(26.7%)나 ‘반일감정’(20.0%)보다 월등히 많았다. 일본 사회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2000년대 들어 ‘한류 붐’을 타고 급격히 상승한 만큼, 최근 몇년 사이 나타난 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은 오래전부터 있던 감정 때문이 아니라 현재, 특히 집권 세력의 행태에 있다고 본 셈이다. 한 국민대생은 “명분과 실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역사문제에 매몰돼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지적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 협상에서 ‘성의있는 조처’를 요구할 뿐 구체적으로 ‘일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쓰다주쿠대생은 “다케시마 문제는 영토문제이고, 군 위안부 문제는 인권문제인데, 이를 혼동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베 신조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등 양국 정상들이 한-일 외교를 다룬 태도에 대해 양국 학생들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태도가 ‘적절하다’는 평가는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도 30%에 불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독도 방문에 대한 시선도 냉랭했다. 일본 쪽에서는 55.0%가 ‘부적절한 일’이라고 답했다. 한국 쪽도 ‘지나친 일’(30.8%), 또는 ‘부적절한 일’(15.4%)이라는 평가가 ‘당연한 일’(38.5%)을 웃돌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일 정상회담을 사실상 거부해온 데 대해, 국민대생들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무의미한 외교”라거나 “무능력하게 눈치보는 것뿐”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내놨다. 일본 학생의 75%도 ‘지나친 일’이라고 답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일(혐한)감정을 접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명 가운데 3명꼴(한국 76.9%, 일본 75.0%)로 ‘있다’고 답했다. 한 국민대생은 “일본 여행 중에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접하고 ‘혐한 위협’을 직접 느꼈다”고 답했다. 다만 반일 또는 혐한 감정에 크게 무게를 두는 이들은 없었다. 상대국이 ‘싫어졌다’는 반응은 한국 쪽에서 단 1명이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반일감정이) 슬프지만 상호적인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관건이 됐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성격에 대해, 쓰다주쿠대생 70%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선택지를 택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 국민대생은 “식민지배는 제국주의 시대의 광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던 만큼, 합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의외로 일본 학생의 55%가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한국 쪽에선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50%)는 유보적 입장이 가장 많았다. 한 국민대생은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베 총리가 망쳤다”고 했다. 반면, 한 일본 학생은 “충분히 사과했다. 언제까지 예전 문제에 연연하고 있을 것이냐”며, 한국 쪽의 지속적 사과 요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직접교류 확대가 양국 관계 개선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소프트파워의 영향이 강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대화를 하면서, 매스컴에 농락되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국민대생은 “한국은 미취학 단계부터 맹목적인 반일감정의 학습이 전승되는 것 같다. 이를 넘어선 젊은 세대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교환학생, 여행 등의 기회로 서로의 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는 절반 이상(한국 57.7%, 일본 60%)의 응답자 가운데, ‘방문한 뒤 인상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단 1명도 없었고 대부분(한국 73.3%, 일본 91.7%)은 ‘좋아졌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부터 극단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 관계맺기에 나서자는 주문도 나왔다. 한 국민대생은 “양쪽에서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반일·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이 두 나라를 극단적인 관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도 감정을 조금 억누를 필요가 있다”며 서로 한발씩 물러서자고 제안했다. 또다른 쓰다주쿠대생은 “서로 갈등하는 것은 양국 정권일 뿐이다. 이제부터 시대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차례니까 리셋을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 김외현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oscar@hani.co.kr
‘관계 악화, 양쪽 모두 책임’ 공감 일본쪽 원인 ‘과거사 사과 거부’ 첫손
한국쪽 원인 ‘한-일 정상회담 거부’
아베-박 대통령 외교에 비판적
‘MB 독도방문’도 부정적 평가 높아
‘식민지배 사과’ 일본 55%가 “부족” 혐한·반일 감정 4명중 3명 경험
관계개선책 ‘교류·대화 확대’ 꼽아
상대국 방문 뒤 “인상 좋아졌다” 한국 쪽의 가장 큰 책임을 묻는 질문에는 일본 쪽과 달리 의견이 어느 한쪽으로 모아지진 않았다. 국민대생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의 한-일 정상회담 거부 때문’과 ‘한국의 끊임없는 과거사 사과 요구 때문’이라는 응답이 각각 20%였다. 반면, 쓰다주쿠대 학생 사이에선 ‘박근혜 정부의 한-일 정상회담 거부’(46.7%)가 ‘과거사 사과 요구’(26.7%)나 ‘반일감정’(20.0%)보다 월등히 많았다. 일본 사회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2000년대 들어 ‘한류 붐’을 타고 급격히 상승한 만큼, 최근 몇년 사이 나타난 관계 악화의 주된 원인은 오래전부터 있던 감정 때문이 아니라 현재, 특히 집권 세력의 행태에 있다고 본 셈이다. 한 국민대생은 “명분과 실리를 구분하지 못한 채 역사문제에 매몰돼 있다”며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지적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 협상에서 ‘성의있는 조처’를 요구할 뿐 구체적으로 ‘일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쓰다주쿠대생은 “다케시마 문제는 영토문제이고, 군 위안부 문제는 인권문제인데, 이를 혼동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복잡하게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아베 신조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등 양국 정상들이 한-일 외교를 다룬 태도에 대해 양국 학생들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태도가 ‘적절하다’는 평가는 일본 학생들 사이에서도 30%에 불과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2012년 독도 방문에 대한 시선도 냉랭했다. 일본 쪽에서는 55.0%가 ‘부적절한 일’이라고 답했다. 한국 쪽도 ‘지나친 일’(30.8%), 또는 ‘부적절한 일’(15.4%)이라는 평가가 ‘당연한 일’(38.5%)을 웃돌았다.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일 정상회담을 사실상 거부해온 데 대해, 국민대생들은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무의미한 외교”라거나 “무능력하게 눈치보는 것뿐”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내놨다. 일본 학생의 75%도 ‘지나친 일’이라고 답했다.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반일(혐한)감정을 접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명 가운데 3명꼴(한국 76.9%, 일본 75.0%)로 ‘있다’고 답했다. 한 국민대생은 “일본 여행 중에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을 접하고 ‘혐한 위협’을 직접 느꼈다”고 답했다. 다만 반일 또는 혐한 감정에 크게 무게를 두는 이들은 없었다. 상대국이 ‘싫어졌다’는 반응은 한국 쪽에서 단 1명이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반일감정이) 슬프지만 상호적인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관건이 됐던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의 성격에 대해, 쓰다주쿠대생 70%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는 선택지를 택해,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한 국민대생은 “식민지배는 제국주의 시대의 광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던 만큼, 합법성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일본이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의외로 일본 학생의 55%가 ‘불충분하다’고 답했다. 한국 쪽에선 ‘뭐라고 말하기 힘들다’(50%)는 유보적 입장이 가장 많았다. 한 국민대생은 “충분히 사과를 했다고 할 수 있지만 아베 총리가 망쳤다”고 했다. 반면, 한 일본 학생은 “충분히 사과했다. 언제까지 예전 문제에 연연하고 있을 것이냐”며, 한국 쪽의 지속적 사과 요구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직접교류 확대가 양국 관계 개선의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소프트파워의 영향이 강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대화를 하면서, 매스컴에 농락되지 않는 게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 국민대생은 “한국은 미취학 단계부터 맹목적인 반일감정의 학습이 전승되는 것 같다. 이를 넘어선 젊은 세대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교환학생, 여행 등의 기회로 서로의 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는 절반 이상(한국 57.7%, 일본 60%)의 응답자 가운데, ‘방문한 뒤 인상이 나빠졌다’는 응답은 단 1명도 없었고 대부분(한국 73.3%, 일본 91.7%)은 ‘좋아졌다’고 답했다. 젊은 세대부터 극단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벗어나 미래 지향적 관계맺기에 나서자는 주문도 나왔다. 한 국민대생은 “양쪽에서 자극적인 언론 보도가 반일·혐한 감정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이 두 나라를 극단적인 관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쓰다주쿠대생은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도 감정을 조금 억누를 필요가 있다”며 서로 한발씩 물러서자고 제안했다. 또다른 쓰다주쿠대생은 “서로 갈등하는 것은 양국 정권일 뿐이다. 이제부터 시대는 우리 같은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차례니까 리셋을 해도 좋지 않을까”라고 했다. 김외현 기자, 도쿄/길윤형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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