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외교

‘한-일-중’ vs ‘한-중-일’ 어떤 것이 맞을까요?

등록 2015-03-24 11:22수정 2015-03-24 11:23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윤병세 외교부 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부터)이 21일 서울 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 B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7차 한중일 외교장관회의를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윤병세 외교부 장관,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부터)이 21일 서울 신라호텔 2층 다이너스티 B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The) 친절한 기자들]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는 개최 순서 따른 공식 명칭
관례 따라 쓰는 경우도 많지만, 분위기 영향 받기도
21일 서울에서 열린 공식 명칭은 ‘한일중 외교장관 회의’였다. 그러나 <한겨레>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은 ‘한중일’이라는 순서로 바꿔서 표기했다. 언론은 대중에게 익숙한 표현을 따른 것이지만, 정부가 한일중이라 한 이유는 이는 개최 순서를 표시한 공식 명칭이기 때문이다.

3국 외교장관 회의는 2007년 6월 한국(제주)에서 시작해 일본(도쿄·2008)-중국(상하이·2009)-한국(경주·2010)-일본(교토·2011)-중국(닝보·2012) 순으로 열렸다. 같은 해 같은 나라에서 3국 정상회의도 열렸다. 이 순서를 반영하되 자국을 앞세워서 공식명칭으로는 ‘한일중’으로 쓴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실제 개최지를 불문하고 그동안 한국 외교부는 ‘한일중 정상회의’나 ‘한일중 외교장관회의’로 표기했다. 비록 평소 언어의 쓰임에서는 일본보다 중국을 더 가깝게 배치하는 ‘한중일’이 자연스럽지만, 그래도 원칙이 섰으니 따랐다는 얘기다.

한-일-중 순인데, 중국은 ‘중일한’ 표기

하지만 ‘개최 순서 표기’ 원칙에 3국 모두가 합의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자국을 앞세우고 개최 순서를 따지면, 일본은 ‘일중한’이 된다. 일본 정부는 실제로 이 회의체를 ‘일중한’으로 표현한다. 평소 쓰임새와 다르지 않으니 일본 언론도 그대로 쓴다. 문제는 중국 정부다. 개최 순서대로라면 ‘중한일’이라고 해야겠지만,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선 이번 회담을 다룬 모든 문건이 ‘중일한’이라고 쓰고 있다. 이번 뿐 아니라 과거에도 중국 정부는 ‘중일한’이라고 했다. 중국 언론도 마찬가지다.

2012년 4월8일 중국 닝보에서 열린 외교장관회의.  배경에 ‘중일한’ 의 순서로 적혀 있다. YTN 화면 갈무리.
2012년 4월8일 중국 닝보에서 열린 외교장관회의. 배경에 ‘중일한’ 의 순서로 적혀 있다. YTN 화면 갈무리.

어찌 보면 중국만 ‘개최 순서 표기’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 같다. 실제 한국 외교부에서는 그런 의미에서, “원칙대로 표기하지 않는 중국이 잘못”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달리 보면, 한국만 자국민들이 평소 사용하는 표현을 무시하고 ‘개최 순서 표기’ 원칙을 고집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른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규칙을 고수하며 한국 정부가 이 3국 회의체를 소중히 여기는, 또는 집착하는 방증이라 볼 수도 있다.

3국 협력은 한국이 가장 적극적

한중일 3국간 회의는 1999년 아세안+3(동남아국가연합 10개 회원국+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일본 쪽 제안으로 한중일 정상이 비공식 조찬 모임을 하면서 태동했다. 하지만 이를 주도한 것은 줄곧 한국이었다. 2004년 한국 정부는 아세안과 별도로 3국 정상회의를 하자고 공식 제안해 2007년 공식 합의를 이끌어냈다. 같은 해 제주 3국 장관 회의로 물꼬가 트자, 이듬해 6월 일본 도쿄의 장관 회의와 12월 후쿠오카에서의 첫 정상회의가 성사됐다. 이후 해마다 회의가 열리고 정례화되면서 의제는 경제, 핵안보, 군축 비확산, 재난 대처, 원자력 안전 등으로 확대됐고, 3국간 협력도 강화됐다.

하지만 6차례 정상회의가 열리며 의장국 순번이 두 바퀴를 돈 뒤 한국이 다시 개최국(이자 의장국)을 맡은 2013년엔 회의가 열리지 못했다. 2012년 일본이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 국유화를 선언하고, 같은 해 말 아베 신조 총리가 당선된 뒤 ‘역사수정주의’ 정책을 펴면서 중-일, 한-일 갈등이 격화했기 때문이다.

굳은 표정의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 시작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교도 연합뉴스
굳은 표정의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 시작에 앞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교도 연합뉴스

중·일 “한국의 적극적인 노력 평가”

한국은 할 수 없이 의장국을 계속 유지하며 회의 재개 가능성을 고민했고, 2013년과 2014년을 건너뛰어 올해 들어서야 3년만의 회의가 열렸다. 지난 21일 외교장관 회담 발표 뒤 나온 공동 언론발표문에는 “일본 외무대신과 중국 외교부장은 그동안 한국측이 의장국으로서 금번 외교장관회의의 개최를 포함하여 3국협력을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온 것을 높이 평가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한국이 한중일 3국 협력에 적극적인 배경에 대해선,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이 2011년 10월 보고서에서 분석한 내용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일관계도 교과서문제나 독도문제등 (중-일 간 갈등 요소와) 비슷한 상황이 있기는 하지만 한일사이에는 지역내 주도권 경쟁은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도 주도권 경쟁의 염려가 없어 중국과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고 조정역할을 하도록 위임을 해 줄수 있다면 한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 질 것이다. 한중일 협력 기제를 통해 한국이 중일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주도권 문제에 얽매이지 않고 한중일협력 구도를 정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중-일 구도로 격화될 수 있는 역내 갈등을 완화시키고 관리하려면 한중일 3국 협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한국의 주도적 구실이 절실한 외교적 환경이 존재한다는 얘기다.

북-일인가 일-북인가

한편, 정부가 일상이나 언론의 쓰임새와 다른 표현을 쓰는 또다른 예로 북한을 들 수 있다. 언론에선 ‘북-미 핵협상’ ‘북-일 교섭’ ‘북-중 관계’ ‘북-러 밀월’ 등의 표현을 쓰지만, 정부가 쓰는 용어는 모두 ‘미-북’ ‘일-북’ ‘중-북’ ‘러-북’ 하는 식으로 북한을 뒤로 밀어버린다. 아래는 이와 관련해 지난해 8월29일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의 정례 브리핑에서 나온 문답이다.

-‘미-북’이라는 표현을 쓴 게 공식적인 입장입니까?

“제가 금방 미-북이라는 표현을 쓴것은 미국은 우리들의 우방이고, 하기 때문에…, 미-북이라는 표현을 먼저 쓴 것입니다.”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됩니까?

“제가 미-북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일-북, 중-북, 러-북입니다.”

정부가 북한을 뒤에 두는 것은 오랜 관행이다. 외교부 관료 출신 한 인사는 “북한과 일본 같은 경우에, 몇년 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일-북’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외교부 내부 보고서에서 일부 ‘북-일’로 쓰는 경우도 등장한 것으로 안다”며 “규칙이 있다기보다는 세태나 시대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곧 북한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얼마나 강경한지 또는 얼마나 부드러운지가 용어의 쓰임새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설명이다.

1972년 9월29일 <동아일보> 1면. 중-일 국교정상화를 다룬 이 기사에서 두 나라는 일-중공 순서로 쓰여졌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 ‘중국’은 일본과 수교한 공산권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대만)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1972년 9월29일 <동아일보> 1면. 중-일 국교정상화를 다룬 이 기사에서 두 나라는 일-중공 순서로 쓰여졌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 ‘중국’은 일본과 수교한 공산권 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화민국(대만)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일-중공’, 수교 뒤 ‘중-일’로 표기돼

언론도 요즘은 주변국 기사에서 대략 ‘남(한)-북-미-중-러-일’ 순서로 쓰는 데 합의가 이뤄진 것 같지만, 이렇게 자리잡히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가령,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시기를 보자. 한국 언론은 일본을 중화민국(대만)과 같이 놓을 땐 ‘중-일’이라고 썼지만,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같이 쓸 땐 대개 ‘중공’으로 부르며 ‘일-중공’이라고 썼다.

일-중공 각서무역 12월초 교섭 결정 (1971년 11월9일 <동아일보>)

금년말로 기한이 끝나는 일-중공 각서무역협정(기한 1년)의 계속 교섭이 12월 초순부터 열리기로 결정됐다.

한중일 친선대회 참가 상은야구팀 향대(대만으로 떠남) (1971년 11월25일 <동아일보>)

중화민국 건국 60주년 기념 한중일 3개국 친선야구대회에 출전할 상업은행팀 일행 24명이 25일 오후 1시20분 대한항공편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일본의 앞자리를 꿰어찼다.

북경회담 앞서 본 ‘아시아 정책’ (1972년 2월21일 <동아일보>)

중일 관계의 개선과 중소 긴장완화가 그들 강대국 자신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으로도 생각된다는 것을 밝혀두어야 한다.

워싱턴의 관망 (1972년 9월30일 <동아일보>)

중일 국교정상화에 대해 미 백악관은 노코멘트. 국무성은 “불만 없고 놀라운 일도 아니다”는 촌평. 신문이나 방송 등도 거의 논평 없는 보도 뿐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반향은 그저 갈대로 간 것이라는 이상의 아무 별난 것이 없다.

그렇게 ‘중일’이 자리잡을 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주변 열강을 나열할 땐, 냉전 구도를 반영한 탓인지 여전히 미국은 일본과 함께 앞으로 오고, 중국은 뒤로 밀려나야 했다.

한미 ‘동반 관계’ 무르익다 (1983년 11월14일 <동아일보>)

이같은 미국의 입장은 이미 지난 76년 키신저 국무장관이 미일중소 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정책이 제의됐을 때부터 표명된 것이었지만….

소, 북한 개방 촉구키로 (1988년 12월21일 <동아일보>)

노태우 대통령은 지난 10월19일 유엔총회연설에서 남북한 미일중소 6개국이 참가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회의를 제안했었다.

1988년 10월19일치 <한겨레> 1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 및 미·소·중·일이 참여하는 ‘동북아 6개국 평화회의’를 제안했다. “나는 오늘… 미국과 소련,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남북한으로 동북아평화협의회의를 열 것을 제의합니다”라고 한 연설문 문구를 반영한 순서였다.
1988년 10월19일치 <한겨레> 1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남북 및 미·소·중·일이 참여하는 ‘동북아 6개국 평화회의’를 제안했다. “나는 오늘… 미국과 소련,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 남북한으로 동북아평화협의회의를 열 것을 제의합니다”라고 한 연설문 문구를 반영한 순서였다.

그러나 냉전이 종식되고 북한 핵이 역내 최대의 이슈가 되면서 냉전 시기 ‘전선’이 희미해지자, 차츰차츰 지금의 순서와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북핵과 한반도 평화 (1994년 9월17일 <동아일보>)

이러한 정세변화가 미중일러남북 등 6자회의를 들먹이게 한다.

YTN특별대담 프로에 출연하는 미중러일의 주한대사들 (1996년 11월9일 <동아일보>)

YTN 특별대담 프로에 출연하는 미중러일 의 주한대사들. 왼쪽부터 제임스 레이니, 장정연, 게오르기 쿠나제, 야마시타 신타로.

결국 한국 언론도 주변 열강을 나열하는 순서에 다양한 시대 변화를 반영해야 했다. 역사의 격랑이 일었던 시기 신문엔 그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셈이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 ‘북풍’ 부메랑…북한 ‘평양 무인기’ 국제기구 조사 요청 1.

윤석열 ‘북풍’ 부메랑…북한 ‘평양 무인기’ 국제기구 조사 요청

문재인, ‘양심’ 읽으며 윤석열 ‘비양심’ 직격…“온 국민이 목도 중” 2.

문재인, ‘양심’ 읽으며 윤석열 ‘비양심’ 직격…“온 국민이 목도 중”

권성동 연설에 ‘민주당’ 45번 ‘이재명’ 19번…실소 터진 대목은 3.

권성동 연설에 ‘민주당’ 45번 ‘이재명’ 19번…실소 터진 대목은

“명태균-김건희 녹음파일 존재 알리자, 쫄아서 계엄 선포” 4.

“명태균-김건희 녹음파일 존재 알리자, 쫄아서 계엄 선포”

‘야당이 박수 한번 안 쳐줬다’ 윤석열에…“국힘 데리고 북한 가라” 5.

‘야당이 박수 한번 안 쳐줬다’ 윤석열에…“국힘 데리고 북한 가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