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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국은 “테러” 미국은 “폭력”

등록 2015-03-06 19:46수정 2015-03-06 22:06

리퍼트 피습 규정 미묘한 차이
“테러 표현, 한국 이미지 훼손” 지적
미국 ‘개인 정신적 문제’ 판단한 듯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의 성격을 놓고 한·미 양국 정부가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6일 “백주 대낮에 미국 대사가 테러를 당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사건을 ‘테러’로 단정한 반면, 미국 국무부는 피습 사건 뒤 낸 성명에서 “우리는 이런 폭력행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폭력’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내 정치권에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나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여야 모두 이번 사건을 “테러”로 일컬었다. 언론 보도에서도 거침없이 ‘테러’라는 제목이 난무한다. 존 케리 국무장관(“몰상식한 폭력 행위”) 등 미국 정부 관료들이나 미국 매체들이 ‘공격’(attack, assault), ‘폭력’(violence)이나 구체적으로 ‘자상을 입었다’(slashed, knifed)고만 표현하는 것과 대비된다. 미국 언론 보도에선 “나는 테러했다”는 피의자 김기종씨의 발언을 인용한 것 말고는, ‘테러’나 ‘테러리즘’, ‘테러리스트’ 등의 단어를 찾기 어렵다.

이런 차이는 한국에선 정치적 배경이 깔린 폭력 전체를 ‘테러’로 인식하는 반면, 미국에선 ‘테러’(테러리즘)라는 표현 자체를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해 제한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법전을 보면, 테러는 “정치적 동기에서 사전에 미리 계획되어 국가 정규군이 아닌 조직·단체에 의해 비무장 목표물을 상대로 수행되는 폭력행위”로 정의된다.

피의자 김기종씨가 ‘한-미 연합훈련 반대’ 등의 정치적 구호를 외친 탓에 이번 사건도 일부 ‘테러’로 규정될 요건을 갖췄다. 그럼에도 테러로 표현하지 않는 것은, 실제 정치적 목적보다는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작용한 일탈적 사례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선 영화배우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총격을 가했던 1981년 존 힝클리 사건도 ‘테러’가 아니라 ‘폭력’으로 분류한다.

미국이 테러라는 표현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굳이 이 사건을 테러로 몰고가는 것은 외교적 실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이 테러가 벌어지는 지역이라는 이미지 손상을 한국 정부가 앞장서 자초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미국 정부 당국자나 미국 내 한국 전문가들이 언론을 상대로 테러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건, 한국이 대낮에 테러가 자행되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있어 보인다”며 “그럼에도 한국 쪽이 되레 ‘테러’를 부각시키면 한-미 관계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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