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9일 오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중국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도착해 의장대 앞을 지나고 있다 . 베이징/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북-미 ‘억류자 문제’ 풀리고
중-일 영토·역사 갈등 봉합
대화국면으로 가는 모양새
남북 교류·협력-6자회담 등
‘주도권 복원 시급’ 한목소리
중-일 영토·역사 갈등 봉합
대화국면으로 가는 모양새
남북 교류·협력-6자회담 등
‘주도권 복원 시급’ 한목소리
장기간 갈등·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동북아 정세가 이번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아펙) 등을 계기로 새틀짜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에 억류중인 미국인들이 지난 8일 전격 석방되면서 북-미 간에 본격적인 대화 탐색작업이 벌어지고, 영토와 과거사 문제로 4년여 동안 첨예하게 대립하던 중국과 일본도 아펙 때 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갈등을 봉합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기본 축으로 하는 출구전략을 준비하지 않으면 동북아에서 외교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선,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하루 앞두고 케네스 배(46)와 매슈 밀러(25) 등 억류 중인 미국인 2명을 전격 석방했다. 케네스 배는 2012년 11월3일 북한에 들어갔다가 15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고, 올 4월10일 북한에 입국한 매슈 밀러는 9월14일 6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은 모두 ‘반공화국 적대범죄행위’라는 혐의를 받았다. 지난달 21일 석방된 미국인 제프리 파울(56)과 달리 두 사람은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다는 점에서, 북한으로선 상당한 ‘정치적 결단’을 한 셈이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억류자 문제가 북-미 관계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이번 억류자 석방으로 북-미 관계의 큰 돌 하나가 치워진 셈이다. 또한 시드니 사일러 미 국무부 6자회담 특사는 최근 <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비핵화 과정을 시작해 북한이 약속을 지키고, 따라서 다른 국가도 (그에 상응하는) 약속을 지키면서 서로간에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며 ‘행동 대 행동’ 원칙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미국인 석방이 북-미 간 신뢰 구축의 마중물이 될 수는 있는 셈이다.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두고 끝없이 갈등해온 중국과 일본도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 일본 안보국장이 7일 “센카쿠 문제를 둘러싼 이견 인정”과 “(일본의) 역사 직시” 등을 담은 4개항에 합의하며 정상회담 걸림돌이 치워진 것이다. 베이징 소식통은 “구체적인 회담 분위기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중-일 관계가 바닥을 친 만큼 두 나라 모두 서로를 자극하는 행보를 자제하며 안정적으로 관계를 만들어가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북-미 간 탐색전이 동력을 얻지 못하고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억류 미국인을 석방했지만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한 상황에서 과거 몇차례 학습효과를 경험한 북한이 2년 남은 오바마 행정부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을 것”(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이라거나 “중간선거에 진 오바마 대통령이 함부로 북한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최종건 연세대 교수) 등의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중-일 관계와 관련해서도 시진핑 주석의 인민군 현대화 작업과 민족주의 강화, 아베 신조 총리의 자위대 활동 강화와 민족주의 행보로 볼 때 언제든 양국 관계가 다시 부딪힐 수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지금처럼 남북관계 주도권을 상실하고, 한반도 주변의 외교 변화에만 촉각을 세우는 식의 천수답 외교만 하다가는 심각한 후폭풍을 맞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금처럼 북·일, 북·미를 거쳐 남북에 영향력이 오는 진행 과정이 바람직스러운지 의구심이 든다”며 “자칫 통미봉남 모양새가 되면 남남 갈등, 남북 갈등, 한-미 갈등 등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남북 간 대화·교류 협력를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도 “한국이 북한의 의도 확인이나 6자회담 복귀 조건 완화 등을 주도하면 오바마 행정부도 부담을 덜게 된다”며 한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와 6자회담 복원에 주도적으로 나설 경우, 중-일 정상회담에 따른 국내 여론 부담이나 북한 위협을 근거로 한-일 관계를 복원하라는 미국의 압박도 덜 수 있다.
이용인 김외현 기자, 워싱턴 베이징/박현 성연철 특파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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