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외교

“한국의 산업·국력 고려할 때 전작권 환수 연기 이해 안 돼”

등록 2014-10-28 20:47수정 2014-10-29 08:30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오른쪽)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오른쪽)와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지난 24일 오후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브루스 커밍스-박명림 대담


2차대전의 포성은 멈췄지만, 식민지와 전쟁의 유산은 여전히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처럼 최근 불거지는 현안도 뿌리는 결국 20세기 초중반의 역사에 닿아있다. 한국사회과학협의회 초청으로 방한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와 그의 오랜 지인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만나 내년 2차대전 종전 70주년의 의미와 동북아시아 여러 현안의 고리를 짚었다. 대담은 지난 2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 대담자 약력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한반도 근현대사 전문가로 한국전쟁에 관한 기념비적인 저작인 <한국전쟁의 기원>(1981~1990) 등을 썼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 한-미 관계, 해방 전후 한국정치 등에서 돋보이는 연구 성과를 보여왔으며,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 등을 썼다.

커밍스 교수

아베내각 위험성 보이지만
일본 내 반대자 많아 걱정안해
미, 핵보유 중국과 수교로
상호간의 전쟁 완전 차단
북핵 해결하려면
미, 대북관계 정상화로 풀어야

박명림(이하 박) 올해와 내년은 청일전쟁 120주년, 러일전쟁 110주년이다. 게다가 내년은 2차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동아시아에서 항구적 평화는 아직 요원하다. 이 대담을 통해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를 성찰하고, 오늘과 내일을 심층 전망하길 희망한다. 먼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의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의 재연기 및 주한미군 이전 문제부터 짚어보자. 주권국가로서 안보와 의식의 대외 의존이 너무도 심하기 때문이다.

브루스 커밍스(이하 커) 한국의 발전된 산업과 국력을 고려할 때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주한미군 이전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미군 주둔 자체는 일반적 현상이었다. 미국은 2차대전 뒤 대부분의 동맹국가들에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안보를 제공했고, 냉전을 거치며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형태의 안보의존이었지만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런 구조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일본에 미군이 없었다면 실질적인 대규모 군대를 갖겠다고 하면서 동아시아 안보긴장을 불러왔을 것이고, 독일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일본과 독일의 미군 주둔은 두 나라의 진정한 ‘과거극복’과 ‘전후’를 볼 수 없게 했다.

 

냉전시대 세계에는 두 개의 냉전체제가 있었다. 유럽에서는 연합국이 다자간 합의를 통해 구축한 얄타체제가 있었다면, 동아시아에는 미국이 단독으로 설정한 일반명령1호 체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선 전범국가 일본 대신 식민?반식민 국가들인 한국, 중국, 동남아가 분단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지속돼온 샌프란시스코 체제 역시 일반명령1호 체제의 변형된 연장이었다. 유럽의 얄타체제는 붕괴되었지만 동아시아 샌프란시스코체제는 아직도 지속되고 있다.

 

두 개의 체제가 구축되면서 독일은 분단된 반면, 일본은 미국이 단독점령하며 분단은커녕 ‘안락한 평화’를 줬다. 끔찍한 역사의 부정의였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습격과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탄 투하를 비긴 걸로 보고 마무리지었다. 미국은 당시 일본을 완전히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731부대의 생체실험 같은 끔찍한 일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묻혔다. 이는 한국전쟁과 전후 지속된 문제들의 씨앗이 됐다. 일본이 전쟁범죄에 대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적절하게 다루지 않았다. 일본군 ‘성노예’, 강제징용 등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게 됐다. 유럽과는 크게 달랐다. 게다가 서독은 전쟁 범죄에 대해 속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맞다. 미국의 전후 계속된 일본편향, 일본중시 정책이 오늘날 동아시아 갈등문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그런데 중국혁명,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세계적 이념대결이 동아시아에서는 계속 열전으로 폭발했던 요인도 중요했다. 사실 냉전 초기 동아시아는 격렬한 열전 지대였다.

 

동의한다. 공산주의와 반공주의만이 중요했던 그 시절, 과거사 문제는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이런 문제가 거론되는 걸 원치 않았던 남한과 대만의 독재 정부들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전후 40년 가량 지속됐던 남한과 대만의 독재체제가 1980년대 말 무너지며 이뤄진 민주화는, 냉전의 종식과 시기적으로 일치했다. 이 때부터 일본에 대한 과거사 사과요구가 불거졌다.

 

‘일본문제’라고 부를 수 있는 동아시아의 과거사문제는 아직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오늘날 동아시아에선 강력한 민족주의가 대두하고 있다. 성노예, 영토분쟁, 교과서 논란,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 과거사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는 반면, 경제적으로는 역내 국가들이 더욱 가까워지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도 거론된다. 그러나 사실 ‘유럽 패러독스’는 아시아보다 더욱 심했다. 기독교, 자유, 평등, 의회민주주의, 국제공법체제를 발전시켜온 그곳에선 두 번의 참혹한 세계대전, 인종주의, 전체주의,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가장 끔찍한 반인도주의를 노정한 바 있다.

 

전쟁은 모든 것을 드러내놓게 만든다. 2차대전 시기 난무했던 극단주의와 갈등을 유럽 사람들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의 평화와 통합의 바탕이 되었다. 동아시아에서 민족주의가 대두하게 된 건, 미국이 일본에겐 ‘안락한 평화’를 준 반면, 다른 국가들을 분단시켰기 때문이다. 2차대전 이후 한국과 일본에 진출했던 미국의 자본은, 1970년대 들어 닉슨 행정부가 관계를 맺기 시작한 중국에도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식으로는 경제 관계가 호전되더라도, 안보, 과거사, 영토 분쟁 등이 풀리지 않은 채 남는 건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오늘날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모두 강한 나라가 된 상태에서 영토, 민족, 역사 등 2차대전의 유산이 불거지는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그런데 중국의 부상 이후 일본은 다시 미국의 안보 우산으로 회귀하며, 동아시아국가들과 갈등하고 있다. 독도문제,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 해석개헌, 집단자위권 문제에서 보듯 장기적으로 일본요인은 또 다른 평화위협 요소로 다가온다.

 

독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독재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반드시 저항하지는 않는다 해도 싫어한다. 일본 사람들은 제국주의 일본이 저지른 일들을 싫어한다. 현 아베 내각의 과거사에 대한 태도 또한 일본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아베 내각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일본 내 여론조사를 보면 헌법 개정, 핵무장 등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다. 아베 내각이 보여주는 경향은 위험하지만, 일본도 민주화된 국가이므로 정치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제 한반도 문제를 보자.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은 거의 모든 국가들과 적대 이후 한 세대 내에 외교관계를 회복하였다. 러시아, 독일, 일본은 물론 중국, 베트남과도 그러했다. 그리고 그 정상화를 통해 미국은 국익과 역내 안정을 얻었다. 그러나 북한과는 두 세대가 넘도록 적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한반도문제의 미해결도 사실 북-미 적대관계의 예외적인 장기지속으로부터 오는 측면이 크다.

 

미국은 북한과 70년 동안, 쿠바와 50여년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에 미국이 북한과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했던 건, 남한이 취약했기 때문이다. 남한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할 때도 미국은 북한의 남침을 우려했다. 1990년대 후반 북한 경제가 무너지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버렸으나, 그땐 북한의 핵개발 탓에 관계정상화가 이뤄지기 힘들었다. 클린턴 때 상호방문으로 놓였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이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바마 정부도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되려는 북한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북-미는 관계가 정상화되지 못하는 이유가 늘 있었다.

 

북-미 관계정상화와 한반도 통일은 세계 및 동아시아에서 2차대전유산과 냉전잔재를 종식시키는 최종 계기가 될 것이다. 그만큼 세계사적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는 미국이 ‘소련봉쇄-일본편향’을 위해 한국을 분단시켰다면, 지금은 ‘중국견제-일본중시’를 위해 다시 북한카드를 쓰려는 걸까?

 

미국이 중국을 더욱 견제하려 했다면, 북한과 벌써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사상 최악의 긴장 상황이므로, 논리적으로는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충분히 택할 법한 선택지다. 북한도 오랫동안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고, 대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게, 러시아와 중국을 놓고 게임을 하는 것보다 이상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엔 북한의 정치적 입지가 없다. 미국의 어떤 세력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촉구하거나 압박하지 않는다. 물론 1970년대 이래 경제적 관계가 끈끈해진 중국은 그렇지 않다.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을 촉진해 세계시장으로 들어오게 했고, 이는 결국 소련붕괴, 사회주의 몰락, 냉전해체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런 세계적 구조변동을 초래한 득책을 북한에 대해서는 왜 시도하지 않을까?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질문이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대미 관계정상화는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이후 미-중 관계의 승자는 미국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세계 경제에 뛰어들어 돈을 벌고 싶어했고, 중국의 젊은 세대는 미국을 동경하며 유학하고 싶어했다. 중국은 민주화 시위나 언론 자유 요구 같은, 바라지 않았던 개방의 결과도 직면하게 됐다. 결국 중국을 고립으로부터 이끌어낸 것은 미국 입장에선 ‘신의 한 수’였다. 중국의 변화는 엄청나서 향후 10~20년이면 한국이나 대만처럼 민주화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반면, 미국의 변화는, 사업가들이 중국에서 돈을 더 벌게 된 정도다. 그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보면 북-미 관계정상화를 한다 해도 궁극적으로 변하는 건 북한이라는 걸 미국은 안다.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를 이유로 관계 정상화에 소극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국가가 되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핵보유를 저지하기 위해서라도 북-미 관계정상화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본다. 북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도 핵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했다. 1964년 중국의 첫 핵실험은 미국에게 큰 위협이었지만, 오히려 관계정상화를 통해 중국의 핵은 미국의 핵과 상호 억지력이 작용하게 됐다. 미-중 사이에는 어떤 전쟁도 일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북한의 핵도 마찬가지로 안전장치라고 봐야 한다. 만약 미국이 핵 보유국인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한다면, 그들의 핵은 전적으로 미국의 핵에 의해 억지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워싱턴에선 북한이 붕괴하면 미국 해병대가 북한에 침투해 무기 체계를 장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왜일까? 테러 집단이 핵을 보유하게 될 거라는 이유를 대지만, 동아시아에 그럴 역량을 가진 테러 집단은 없다. 그들은 한국이 핵을 보유하는 걸 용납하기 싫어서다. 만약 북한이 붕괴해서 통일이 되면 통일한국이 핵보유국이 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역설을 살펴봐야할 것 같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를 추진했다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비확산’그룹의 노선을 좇아 어떤 적극적인 북한 비핵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왔다. 북핵문제에 관한한 최근 들어 미국은 백악관-국무부-주한대사관이 ‘북핵 불인정-비핵화’노선을 선호하는 그룹이라면, CIA-국방성-군부-군산복합체는 ‘북핵 인정-비확산’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후자는 북핵을 이유로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막대한 무기판매이익을 얻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부들이 그들을 좇아 북한 비핵화를 위한 적극적 주도역할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놀랍다. 북한 비핵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해야하는 당사자는 한국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북관계에서 상당한 진전을 봤고 장기적인 화해를 통해 통일을 추구했다. 그 방식이 북한에 접근하고 성과를 얻는 유일한 방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우파 기득권 정부의 귀환이다. 이들은 북한에 대해 ‘무력 접수’ 또는 ‘붕괴 방치’ 외에 다른 노선을 거의 시도해본 적이 거의 없지만, 그간 아무 성과도 못 봤다. 그러는 사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더 갖췄을 뿐이다.

박명림 교수

미, 일본 중시 정책은 ‘냉전 유산’
일, 미국 안보우산으로 회귀 뒤
해석개헌 등 평화위협 요소로
중, 경제성장 뒤에도 일당통치
민주주의 경로에 대한
예외냐 다른 모델이냐 갈림길

 

김일성, 김정일 체제와 비교했을 때 김정은 체제는 급작스레 등장한 측면이 있다. 당장 위기가 오지는 않겠지만 김일성 집권초기의 소련군, 김정일 집권초기의 김일성과 같은 후원자도 없다. 젊은 김정은이, 고립되고 붕괴된 경제체제를 이끌고 국가생존, 경제회복, 북핵, 통일문제를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능력은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체제 자체가 불안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랫동안 북한붕괴론이 이야기됐지만 북한은 여전히 붕괴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체제와 인권 문제에 관한 압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유엔이 북한의 지도자들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할 수도 있고 김정은이 그 명단에 들어갈 수도 있다. 북한은 이를 모욕이라 받아들이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노력이 있을 순 있어도 그렇게 불안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이제 중국을 말하자.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중국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최근 경제를 넘어 안보 면에서도 가까워지는 분위기다. 동맹 관계인 북한-중국은 과거 같지 않다. 박근혜-시진핑은 벌써 여러 차례 만났으나, 김정은-시진핑은 아직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은 지금 남한과 북한의 제일 무역상대국이고, 북한의 유일 동맹국가다. 미국이 한미 동맹-북미 적대라는 이중구도를 통해 남한에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동안 중국은 남북 모두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석좌교수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하면서, 서울과 평양에 동시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도 한-중 수교에 맞춰 교차 승인을 하려는 구상이 있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북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영향력만 갖게 됐을 뿐이다. 중국은 아주 영리하게 한국에 대해서도 우호적으로 지내는 관계를 형성했다. 중국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 외에 마땅한 선택지가 없는 북한에 대해서는, 중국은 꾸짖고 비판하면서도 북-중 관계 자체는 훼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한과 북한에 대해 동시에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미국은 중국의 이런 한반도 정책을 배워 북미관계 개선에 나서야한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한 최대의 영향력은, 아직 중국이 아니라, 여전히 미국이 갖고 있다.

 

지난 70년 동안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중요한 변화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이었다. 그 과정에 네 차례 ‘차이나 쇼크’가 있었다. 한국전쟁 참전,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일본과의 국내총생산(GDP) 역전(2010년), 미국과의 G2 시대 개막 등이다.

 

한 가지 차이나 쇼크를 더해야 할 것 같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이다. 중국은 1949년 혁명과 통일을 통해 얻은 강력한 국력을 바탕으로 한국전에 참전했고, 미국과 교착 국면을 이뤘고, 제3세계에 대한 영향력도 키웠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 이후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받던 중국이 1949년을 계기로 부활했다. 지금의 부상은 그때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요즘 경제 규모가 커졌다 해도 1인당 지디피는 아프리카 수준이다. 연간 지디피 순위도 미국이 약 16조달러, 중국은 9.2조달러고, 뒤이어 미국의 동맹인 일본(4.9조), 독일(3.6조), 프랑스와 영국(각 2.5조) 순이다. 중국은 경제규모가 큰 동맹이 없고, 기술력이나 금융체계도 서방에 못 미친다.

 

미국의 현실주의자들이 중국위협론, 미중충돌론을 말하는 것과는 다른 진단이다.

 

중국에 대해 걱정할 것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영토 분쟁 등에서 보이는 변덕스러운 태도다. 중국은 스스로 경제대국이라면서, 모두가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남중국해의 탁자만한 ‘섬’에 모래주머니를 쌓아 군대를 주둔시키려 한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며 안보 불안을 드러내는 건 상상할 수 없다. 중국의 안보는 최근 홍콩 시위에서 보듯 국내에서도 불안하다. 중국은 민주화되기 전까지는 미국, 일본, 유럽을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요즘 시진핑 주석은 공자 말을 인용하기 시작했는데,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에서 공자를 인용하는 지도자가 나온다면, 그가 공산당의 마지막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중국위협론은 미-일의 보수 세력에 의한 과장인가? 경제와 통일문제를 포함해 한국 입장에선 중국의 부상은 매우 렷하게 다가온다.

 

1945년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이 중국을 걱정해야 했던 유일한 일은 한국전쟁 참전 뿐이었다. 80년대 이후 중국은 산업면에서 한국의 경쟁자이자 동맹이 됐지만, 중국이 부상한다 해도 금세 미국을 대체하거나 압도할 순 없다. 지디피 성장과 대규모 관광객 같은 걸로 한국은 위협을 느끼겠지만, 80년대 미국도 일본으로부터 똑같은 일을 당했다. 그땐 일본이 21세기 새로운 강대국이 될 거라고 했다. 그러다 거품이 꺼진 일본은 지금도 세계 3위 경제 대국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를 위협하진 않는다.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진단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이 경제성장 이후 공자와 유교를 들고 나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역진이자, 자신들의 근대화와 국가건설, 개혁개방에 대한 정면부정이다. 문제는 민주주의라고 본다. 근대 이후 경제발전에 따르는 시민혁명, 보통선거, 복수정당제, 의회체제는 피할 수 없는 경로였다. 중국이 경제성장 이후에도 일당통치를 지속할 수 있을까? 중국의 실험은 민주주의 경로에 대한 ‘예외’와 ‘또 다른 모델’ 사이의 중대한 갈림길로 보인다.

 

한국과 대만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두 나라는 지난 70년 가운데 40년은 독재 속에서 경제가 크게 성장한 뒤, 거의 같은 시기에 민주화 요구가 분출해 직선제를 이뤘다. 중국도 이런 궤도에 올라있다고 본다. 차이가 있다면 1949년 혁명으로 형성돼 8500만 엘리트 당원을 보유한 중국 공산당이 쉽게 해체되진 않을 거란 점이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자 누구도 이젠 사상적으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것 같진 않다. 단지 홍콩 시위 같은 반정부 움직임을 막아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을 뿐이다.

 

이제 대담을 맺어야할 것 같다. 우리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지만, 사실 인권?자유?평등?복지?민주주의?화해?평화의 가치와 관련하여 오늘날 동아시아가 세계와 나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동아시아시민으로서 늘 부끄럽고, 앞으로 할 일이 정말 많다는 느낌이다. 몇몇 분야의 기술?상품?산업?물질의 발전을 빼면 전후 70년 동안 동아시아가 과연 무엇을 이루었는지 깊이 반성하게 된다.

 

그 점에서 한국민들은 자부를 느껴도 좋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민주화운동을 전개했고, 세계적인 성취도 보여주었다. 자신들의 과거사를 둘러싼 진실과 화해 노력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전쟁을 치른 북한과의 평화와 공존 노력도 마찬가지였다.

 

정리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이재명 교섭단체 연설…조기대선 염두 ‘집권플랜’ 시동 1.

이재명 교섭단체 연설…조기대선 염두 ‘집권플랜’ 시동

문재인 전 대통령 인터뷰 ① “윤석열 발탁, 두고두고 후회한다” 2.

문재인 전 대통령 인터뷰 ① “윤석열 발탁, 두고두고 후회한다”

민주당, ‘여성 언어폭력’ 강성범씨 홍보 유튜브 출연자로 낙점 3.

민주당, ‘여성 언어폭력’ 강성범씨 홍보 유튜브 출연자로 낙점

이재명, 연설 중 국힘 소리 지르자 “들을게요, 말씀하세요” [현장] 4.

이재명, 연설 중 국힘 소리 지르자 “들을게요, 말씀하세요” [현장]

시진핑, 우원식 40분 극진한 환대…‘울타리 고치기’ 시작됐다 5.

시진핑, 우원식 40분 극진한 환대…‘울타리 고치기’ 시작됐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