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면(86)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
‘원로 일본 연구자’ 최서면 원장
정상회담 보다 과거사 정리가 먼저
정상회담 보다 과거사 정리가 먼저
“현재 한-일 간의 문제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다.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구축하자는 역사 인식이 외교를 하도록 명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각각 집권 2년차가 다 되도록 한-일 정상회담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원로 일본 연구자 최서면(86·사진)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의 답변이었다. 역사 인식이 바탕이 되지 않은 외교는 “원칙 없는 외교”라고도 했다. 다시 말해,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리 없이 한-일 정상회담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는 것이 ‘한-일 현대사의 막후 인물’로 불리는 그의 조언인 셈이다.
최 이사장은 “세계 대국들의 역사를 보면, 나쁜 짓 안 하고 대국이 된 나라가 없다”며 “미국의 노예제, 독일의 나치 등을 보면, 대국은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용감하게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고쳐나갔다”고 말했다. 이에 견줘 일본은 어떨까. 최 이사장은 “일본은 전후 배상금도 물었고, 한국과는 경제협력을 통해 의무도 다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찾으려다 보니, 과거 선조들의 잘못을 교과서에까지 싣는 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는 한-일 관계가 원래부터 이렇게 나빴던 건 아니었다고 환기시켰다. 최 이사장은 “1965년 한-일 협정 이후 최근까지 한-일은 모범적으로 잘 지내는 나라들이었다고 본다”며 “그게 가능했던 것은 협정문이나 아키히토 일왕 발언으로 일본이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계 악화는 누구 탓일까. 그는 “일본에선 흔히 세번이나 사과했다는 얘길 하는데, 일왕이, 총리가 잘못했다고 해놓고, 문부대신이 그 발언을 뒤집으며 ‘잘못이 없었다’는 식의 얘기를 한다. 그렇다면 잘못했다는 말이 기억에 남겠나, 아니면 그 발언을 취소한 말이 기억에 남겠나?”라고 비판했다.
최 이사장은 “한-일 관계 수천년 역사 가운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의 주권을 뺏은 건 20세기 초 ‘일제 40년’뿐”이라며 “길게 보면 불행한 역사는 짧았다. 이 짧은 기간 때문에 양국 관계가 잘못됐다면, 왜 잘못됐는지는 양국이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글·사진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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