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 지지 표명하고선
한국 ‘북 압박 공조’ 이탈 주시할듯
“미국 설득 작업 병행해야” 지적
한국 ‘북 압박 공조’ 이탈 주시할듯
“미국 설득 작업 병행해야” 지적
북한 쪽 최고위급 대표단의 남쪽 방문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지지 입장을 보내지만, 남북이 가까워질수록 우리 쪽에 속도 조절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외교부 관계자들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한국 쪽과) 황병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남에 대해서도 논의했다”며 “미국의 정책이 늘 그래왔듯,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강화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미국은 항상 지지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을 재확인했을 뿐 특별히 구체적인 입장을 더 내놓지는 않은 셈이다. 지난 주말 사이 미 국무부에서 나온 “우리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지지한다”는 원론적인 언급과 엇비슷하다.
미국은 남북관계가 안정돼 현상유지되는 것을 선호한다.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하거나 갈등이 고조될 경우 미국이 연루될 위험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반도 문제를 놓고 갈등이 깊어지면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북한 대표단의 방문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이런 맥락에서 일정 정도 속내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접촉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각종 회담 정례화 등 급물살을 타더라도 미국이 같은 태도를 유지할지는 확실하지 않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미국은 외형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지지하지만, 북한을 압박해온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한국이 이탈해 북한과 대화를 한다고 하면 미국 내 비판적인 목소리를 반영해 소극적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5월 말 납치자 문제를 둘러싸고 비밀접촉을 진행했던 북-일이 합의에 이르렀을 때도, 미국은 떨떠름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미국이 역내 역학구도의 각 ‘플레이어’들, 심지어 한국을 상대로 주도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도 있다. 2009년 가을 이명박 정부 시절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쪽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비밀리에 만나는 등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던 시기, 미국 국방부 당국자가 갑자기 ‘북한이 이명박 대통령을 남북정상회담에 초청했다’고 언급해 산통을 깬 적이 있다. 당시 정부는 화급히 “미국 쪽의 오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내부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의도에 의구심을 표시했다.
현재 미국의 국내 상황도 남북관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는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슬람국가(IS) 공습 등 국면에서, 더이상 (아시아를 중시한) ‘재균형’ 전략을 추구하지 않고 9·11 이전 형태의 전지구적 군사배치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북한은 이를 역내 안보 불안 요인으로 받아들여, 앞으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선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미국에 대한 설득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연구실장은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숨구멍이 막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이 틈바구니 속에서 북한의 공세와 미국의 의도에 대한 시험대에 올라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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