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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윤병세 장관의 모순된 ‘인권대화’ 제안

등록 2014-09-24 20:37수정 2014-09-24 22:47

현장에서
김외현 기자
김외현 기자
학급회의를 앞두고 반장이 몇몇 친한 친구를 따로 복도로 불러 급우 홍길동의 행실에 대해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여러 이유로 이 반에서 ‘왕따’가 된 길동은 어디선가 소식을 듣고 자기도 끼워달라고 했다. ‘반장과 친구들’은 “네가 이 자리에 오는 건 부적절해 보인다”며 거절했다. 반장 친구 한명이 길동의 ‘복도 회의’ 참석은 거부하면서도, 길동과 대화를 하겠다며 밖으로 소문을 내고 다닌다면 그는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 걸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남북 인권대화’ 제안 과정을 거칠게 비유하면 이렇다. 윤 장관은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북한 인권 고위급 회의’에서, 뜬금없이 “남북이 인도적 이슈뿐 아니라 인권 대화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의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주최한 별도 모임으로,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간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 외교장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 전날인 22일 북한은 ‘당사자 발언권’을 주장했지만 주최자인 미국이 거부했고 한국도 동조하고 나섰다. 북한에 발언 기회마저 주지 않으려는 한국이 남북대화를 제안하는 건 모순이다.

껄끄러운 주제를 논의하기에는 양자대화보다는 여러 국가가 모이는 다자대화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 남북 양자대화에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내정간섭’이라는 반박이 이어지고 곧바로 남북간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는 탓이다.

게다가 북한이 정치적 아킬레스건으로 여기는 인권 문제는, 남북 간에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채널이 가동된다고 해도 북한이 쉬이 응하지 않을 주제다. 하물며 고위급 접촉도 열리지 못하고 모든 대화가 중단된 지금은 난망하다. 2001~2003년 북한이 유럽연합과 인권대화를 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에서 적극 권한데다, 유럽연합이 북한의 체제 위협 세력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북관계와 주변 정세가 안정돼야 인권에 대한 북한의 변화된 태도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셈이다.

정부의 최근 행보를 보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신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보다는 오로지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힘을 실어 북한의 기를 꺾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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