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l 북-일 스톡홀름 합의 파장
한 “납북문제 해결 이해하지만…”
미 “코멘트 할 게 없다”
한 “납북문제 해결 이해하지만…”
미 “코멘트 할 게 없다”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 이해는 하지만,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일 공조가 지속돼야 한다. 지켜보겠다.”
30일 0시가 다 되어 한국 외교부가 담당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5시간여 전 북한과 일본 당국이 발표한 북한과 일본의 교섭 결과에 대한 정부의 공식 반응이었다. 시간이 걸린 이유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발표에 임박해 합의 내용을 받았다. 번역과 자료 분석에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과 동시에 받았지만, 중국은 북한이나 일본으로부터 사전통보를 못 받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당황스러운 이 순간’을 어떻게든 피해보고 싶어하는 속내가 배어난다.
북한, 그리고 북-중 공조에 대응해 한-미-일 공조 강화에 앞장서온 정부는, 북한과 일본이 납치 문제 재조사와 제재 완화를 맞바꾼 이번 북-일 국장급 협의 결과에 적잖이 곤혹스러워하는 눈치다. 무엇보다 한-미-일 공조의 와해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도 현재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라는 큰 틀을 일본이 흔들까 경계하는 기류가 읽힌다.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9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의 독자적인 대북 제재 완화에 대한 견해를 묻는 거듭된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히 코멘트 할 게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사키 대변인은 또 “우리는 일본이 납치 문제를 투명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고 말했다. 인도주의적 성격 탓에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노력을 정면으로 반대하지 못하지만 “투명한 방식”이란 표현을 통해 한-미-일 공조를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당혹스러워하지만, 북한과 일본은 이해관계가 비교적 맞아떨어지고 있다. 북한은 남북관계 악화와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 중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외교 틀에서 벗어날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일본과의 교섭뿐 아니라, 나진-하산 프로젝트에서 보듯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일본의 손을 잡는 것은 가장 근거리에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낼 수도 있어 북한으로선 ‘양수겸장’을 노림직하다.
일본은 한-미-일 공조와 중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 틀을 벗어나려는 북한의 전략을 활용해, 가장 큰 국내 정치적 현안 가운데 하나인 납치 피해자 문제의 진전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북핵 6자회담 때도 번번이 핵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납치 문제를 거론해 북한을 압박하곤 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미국과 힘을 합쳐야 하는 국면에서 김을 빼버리는 ‘스포일러’가 돼버린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본다”고 말했다.
북한과 일본이 가까워지는 것은 처음이 아니지만, 한국의 반응은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에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했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2000년 6·15 정상회담 뒤 남북관계의 해빙기 속에서 김대중 정부가 되레 북한과 일본의 관계 진전을 주선하고 판을 깔아줬기 때문이다. 외교관 출신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북한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우리도 창조적 해법을 내야 한다”며 “우리가 주동적으로 움직이면 주변에서 뭔가 하더라도 당황스럽지도 혼란스럽지도 않다”고 강조했다.
김외현 기자, 워싱턴/박현 특파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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