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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대화록 공개권한 누구도 없어…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 어기는 꼴”

등록 2013-07-02 20:06수정 2013-07-03 07:19

기록물 전문가들 의견은
노 전 대통령과 대리인만
비밀보호 해제 가능
현행법상 공개땐
7년이하 징역 등 처벌 받아야
국회가 2일 자료제출 요구안을 통과시켜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에 보관돼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자료를 제출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국회가 ‘열람’을 넘어 외부에 ‘공개’까지 하면 이는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국회가 요건을 갖출 경우 해당 문서를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사본제작 및 자료제출”을 할 수 있도록 했을 뿐 공개를 허용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초대 국가기록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현행법이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 보호 문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한 것은 국회 업무 과정에서 필요한 경우 자료를 참고하라는 것이지 이를 공개하라는 취지가 아니다”며 “이번 자료제출 과정에서 해당 문서가 공개된다면 이는 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국회가 ‘열람 및 공개’를 요청한 문서는 국가정보원이 이미 공개한 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뿐 아니라 회담과 관련된 사전 준비와 사후 조처 관련 회의록, 보고서, 기타 부속 관련자료 등 민감한 문서 기록물이 망라됐다. 이들 자료는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로 최장 30년 범위 안에서 공개는 물론 열람도 금지된다. 다만 국회의 3분의 2 동의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으면 열람과 사본제작, 자료제출은 가능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문서를 외부에 무단 공개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전문가들은 국정원이 이미 대화록을 공개한 탓에 관련 문서를 비밀로 보호해야 할 실익이 없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일리 있는 의견이지만 위법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답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현행법상 비밀보호를 해제할 권한을 가진 이는 해당 문서를 생산한 전임 대통령과 그 대리인뿐인데 노 대통령이 생존해 있지 않고 대리인도 없어 현재로선 보호를 해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도 “현행법상으론 이 문서를 공개할 권한이 누구에게도 없어 문서가 공개된다면 국회가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2007년 정상회담에 직접 참여했던 인사들은 이번 공개가 남북관계에 끼칠 파장을 우려했다. 당시 방북단의 일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던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이번 사태가 초래된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나쁜 동기가 숨어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문서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기보다 여야간 토론을 통해 정제된 형태로 알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익한 원장은 “국회에서 이 기록물을 무분별하게 공개하기보다는 비공개 토론을 벌인 뒤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현명한 대안이다. 문서를 열람한 이들이 원본과 국정원 보관본의 내용에 큰 차이가 없다고 언급하는 것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남 한신대 교수도 “법이 정한 합리적 절차를 벗어나는 일을 국회가 해선 안 된다. 정쟁을 위해 문서를 공개하면 앞으로 어떤 정부가 충실히 기록을 남기겠냐”고 반문했다.

길윤형 강태호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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