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카드 만만찮은 한·미
추가제재로 핵실험 부를땐 한반도 요동
무조건 대화조성도 정책실패 자인 부담
‘전략적 인내’ 대북기조 유지 쉽지않을듯
추가제재로 핵실험 부를땐 한반도 요동
무조건 대화조성도 정책실패 자인 부담
‘전략적 인내’ 대북기조 유지 쉽지않을듯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실물 공개로 한국과 미국의 북핵 정책이 기로에 섰다. 대북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높이느냐, 아니면 적극적으로 대화 국면으로 전환하느냐는 선택의 시점에 이르렀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공개는 미국 정부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들고 있다. 시설 규모가 한-미 정보 당국의 예측을 뛰어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핵무기 확산 방지를 세계 경영 전략의 중요한 우선순위로 앞세우고 있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정면 도전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최근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이 경수로 발전의 연료, 곧 전력 생산을 위한 평화적 목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전력 생산에 필요한 저농축 우라늄을 원심분리기로 반복해 농축하면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고농축 우라늄은 운반도 쉽고, 핵실험 없이 바로 미사일 탄두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로 바꿀 수 있다. 한마디로 확산이 쉽기 때문에, 이란 등 중동 국가로 핵무기 또는 핵물질이 확산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미국의 신경줄이 팽팽해질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 평화상을 선수금으로 받은 ‘채무자’의 처지에 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취임 초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 국정목표로 삼아 북한의 핵포기를 요구하며 대화를 단절하다시피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핵화로 가는 길은 점점 멀어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한-미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우선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2일 북한의 농축우라늄 시설 공개를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논리라면 추가적인 대북 제재가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 대응을 위한 ‘5·24 조처’로 한-미는 대북 제재 수단을 사실상 소진해 버렸다. 한-미는 중국을 설득하겠다는 태도지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이 ‘평화적 이용’이라고 강변하고 있는 북한에 맞서 독자적으로 제재의 칼을 휘두를 가능성도 현재로선 희박하다.
한-미 양국이 무조건 강공을 펼칠 경우 한반도 정세가 또한번 요동칠 가능성이 적지 않아 이 또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북한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근 “미국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끝내 방해하고 조선(북)에 압박을 가하는 길을 택한다면 핵억제력 강화 노선의 적극적인 추진으로 조선을 떠밀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농축우라늄 시설을 이유로 제재나 압박을 가할 경우 3차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엄포다.
그렇다고 한-미가 지금 당장 ‘조건 없는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보즈워스 대표는 이날 ‘필요하다면’ 대북 정책을 조정하겠다고 했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내놓아야 6자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일단 지금까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로선 갑작스럽게 대화 국면 조성에 나설 경우 기존 대북정책의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 되고, 하원 다수석을 차지한 공화당의 비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미가 ‘전략적 인내’라는 현 기조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이번에 공개한 시설 이외에 추가적인 시설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핵물질 확산의 위험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 당장은 한-미 당국자들이 중국으로 달려가 협조를 요청하고 있지만 이럴 경우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주는, 한-미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결국 앞으로 한반도 정세는 미국 여론의 향배,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 행정부의 의지,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대북 태도의 변화 가능성, 북한의 추가적인 긴장 고조 행위 여부, 미-중의 역관계 등 다양한 변수들의 흐름이 정리돼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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