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 청와대에서 공식기자회견을 마친 뒤 함께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전략? 청와대 “준비된 답변…미국 비준 설득용”
실언? 여당 “실언”…협상팀 ‘재협상’ 부인 급급
실언? 여당 “실언”…협상팀 ‘재협상’ 부인 급급
이대통령 ‘FTA 자동차발언’ 되짚어보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동차 분야에 대한 재협상 뜻을 내비쳐 파장을 일으킨 이명박 대통령의 ‘문제성 발언’이 나온 지난 19일. 한-미 정상 기자회견 때 질문자로 나선 이는 한국 기자, 미국 기자 각 1명이었다. 당시 마이크를 먼저 잡은 한국 기자가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해 질문을 하자,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이 말할 테니 저는 듣기로 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흥미롭게도 뒤이어 미국 기자가 ‘한국 자동차 시장을 개방해 한-미 에프티에이를 타결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이 대통령의 태도는 달라졌다. 이 대통령의 입에선 “자동차 분야에 문제가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이야기할 자세가 돼 있다”는 문제의 발언이 술술 흘러나왔다. 청와대 쪽에선 준비된 답변이었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통상(관료) 쪽과 수없이 논의를 하면서 준비해왔다”며 “충분히 예상한 질문이었고 대통령도 준비된 답변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의 다른 핵심 관계자도 “미국 쪽에서 미리 질문을 주진 않았지만 여러 예상 질문들이 있었고 자동차 문제가 나오면 이렇게 답하는 걸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일견 설득력을 띠는 전언이다. 한-미 에프티에이 사안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처지라는 점에서다. 이 대통령은 한-미 에프티에이에 직결된 한-미 쇠고기 협상 실패로 불거진 ‘촛불 시위’로 지난해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준비된 발언을 넘어 고도의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해석까지 나온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우리 쪽에서도 오바마한테 (양보성 발언을 해) 힘을 실어줘야지 (미국에) 돌아가서 의회를 상대로 협정 비준을 위한 설득 작업을 벌이지 않겠느냐”며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해 준비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한 논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무역수지 개선, 일자리 창출 등이었고, 여기에 더해 자동차 문제를 거론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지만 의문은 남는다. 준비된 발언 또는 전략적 발언이었다는 해석이나 전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부정적 파장’이 너무 큰 탓이다. 자동차 분야의 재협상이나 재협의는 미국 쪽에 추가로 양보하는 것을 뜻한다는 사실은 청와대에 커다란 부담을 지우고 있다. 문제성 발언 이튿날 미국 연방 하원 세입위원회에 한국의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한국 쪽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제출된 게 대표적인 예다. 자동차 이외 다른 분야에서 미국 쪽의 양보를 이끌어내기엔 한-미 관계의 특수성이나 협상 역량의 격차를 생각할 때 그다지 현실적이지 않아 보인다. 자칫 쇠고기 협상 때처럼 국민적 비난에 직면해 청와대가 다시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관측을 낳는 대목이다. 미묘한 외교적 사안까지 미처 챙기지 못한 이 대통령이 기자회견 당시 실언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그냥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비즈니스적인 발언이었던 것 같다”며 ‘실언론’을 제기했다. 그는 “정상회담에선 차라리 어색한 침묵이 흐를망정 막 얘기해선 안 되는데 실수한 것 같다”며 “이제 와서 진화하려는 게 되겠나”라며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김대원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고 난 뒤 곧바로 협상 실무대표자(김종훈 본부장)가 재협상이 아니라고 한 걸로 보아 사전에 논의되지 않은 것임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쇠고기 협상 때는 한번 약속한 것이어서 더 이상 추가 협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는데, 이번에는 전혀 달라 일반적인 원칙이 없고 너무 미숙하다”고 덧붙였다.
실언이든 전략이든 이 대통령 발언의 뿌리에는 미국 쪽에 추가로 양보를 하더라도 한-미 에프티에이 국회 비준을 서둘러 마무리지으려는 통상 관료들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자동차 분야를 중심으로 한-미 에프티에이 재협의 논란 때마다 외교통상부 쪽에선 ‘협정문을 바꾸는 협상은 없다’는 뜻을 밝혀왔다는 점에서다. 외교부의 이런 태도는 협정문 본문을 바꾸지 않고 부속서를 덧붙이는 재협상 내지 추가 협의는 수용하겠다는 뜻으로 여겨져왔다. 김영배 황보연 황준범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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