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찰머스 존슨 소장과(왼쪽)과, 장달중 교수
동북아·동아시아가 지금처럼 뜨거운 화두였던 적이 있을까. 80년대말 90년대 초 이래 탈냉전의 큰 흐름 앞에 구 질서는 무너졌다. 새로운 질서는 아직 모색 중이다. 동북아 평화균형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한미 미래동맹의 방향, 미일동맹의 세계화와 중국 위협론, 일본의 평화헌법개정 및 보통국가론, 중국위협론에 대항하는 중국의 화평굴기론, 중일간의 패권적 경쟁 등이 모두 이와 관련돼 있다. 동북아의 문제는 한중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미국과 이들 세나라와의 관계 그리고 미국의 아시아정책은 가장 큰 변수다. 러시아가 한중일 협력의 동북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도 관심사다. ‘동북아를 묻는다’는 주제 아래 국내학자와 미일중러 4강의 저명한 학자들 사이에 4차례에 걸친 릴레이 대담을 준비했다.
존슨 “미국은 중-일 사이에 균형자 역할해야” 장 “미-일 동맹과 중국이 대립하는 구도…한국은 이를 우려” 장달중= 중국의 부상에 대응해 미국과 일본의 군사동맹 역시 강화되는 구도가 펼쳐지는 것 같다. 지금 동아시아에선 중국과 일본의 라이벌 구도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가. 찰머스 존슨=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고 헌법을 개정하는 걸 지지하는 건 잘못되고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미국과 중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킨다. 올 2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일본과 새로운 군사관계를 정립하고, 대만해협 문제가 전략적으로 일본에 중요하다고 말한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장= 당신은 중국이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다소 부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중국의 부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에 더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존슨= 1백년 전을 돌아보자. 영국이나 미국과 같은 전통 강대국들은 독일이나 일본, 러시아처럼 신흥 강대국들과 분쟁을 조정하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불러왔고, 그 뒤 45년간이나 냉전을 지속하게 했다. 지금의 초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을 지닌 중국이 부활한다는 점이다. 중국의 재부상과 관련한 분쟁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게 필요하다. 군사적 방법으로 이걸 조정하려는 건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의 안전이란 관점에서 보면, 미국은 중국과 평화롭게 이견을 조정하고 공존하는 게 현명하다. 중국은 지금 경제적 부를 성취하는 데 골몰해 있다. 누가 강제로 그들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이전엔 전쟁을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장= 당신의 저서를 보면, 냉전 시절 동북아시아 평화와 질서는 이 지역 주둔 미군의 압도적 우세를 바탕으로 유지돼 왔으나 이제 냉전 이후엔 미군을 철수해야 하고, 미국이 중국과 일본 사이에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앞으로 이 지역의 전체적인 역학구도는 어떤 모습이 되리라 보는가. 존슨= 내가 보기에 미국의 정책은 동북아시아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고 미국을 추월할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인 변화인데, 미국은 여기에 대비하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국의 실패엔 두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미국의 외교정책이 거의 전적으로 국내정치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미국이 세계의 슈퍼파워로서 기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 및 이들과 결합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의 가치전쟁의 와중에 살고 있다. 이것이 첫번째 실패요인이다. 두번째로, 동북아시아 지역을 다루는 데서 미국의 취약점은 미국 정부 내에 유능한 사람들이 없다는 점이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이 지역을 다룰 역량이 부족하다. 그는 중국의 공산당 정권이 직면하는 문제들, 예를 들면 영토 문제와 같은 미묘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워싱턴에 있는 친일본 정치인들은 일본 전문가들이 아니다. 나는 일본의 재무장을 매우 위험스럽게 본다. 일본 재무장은 일본 국내에서도 특별히 인기 있는 건 아니지만 특히 동북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반감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나라가 여기에 반대하기 때문에 일본은 몰래 이걸 추진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또 하나의 매우 민감한 현안은 중국의 고도성장이다. 중국 공산당은 너무 많은 권력을 갖고 있고 너무 많이 부패해 있다. 중국인들은 레닌식 경제구조를 해체하고 고도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러시아처럼 혼란을 겪지 않은 걸 자랑스러워 한다. 그러나 이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앞으로 베이징의 병원에 있는 노인들을 제외하고는 이 나라에 공산주의자는 더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공산주의란 이데올로기를 더욱 극단적이고 치명적인 민족주의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역에서 미국은 시대착오적이다. 미국은 여전히 동북아시아를 순항미사일이나 항공모함 편대와 같은 군사력으로 지배하려 하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지상군을 대규모로 빼내고 있다. 장=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은 한국의 민족주의나 중국의 부상에 매우 공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마도 여기에는 일본 국내정치의 폐쇄성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미-일 동맹을 통한 미국의 지원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고 보는데... 존슨= 내가 1950년대에서 70년대까지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비록 미군 점령 아래서 평화헌법 9조를 만들긴 했지만 이것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군대 비보유와 교전권 포기를 선언한) 평화헌법 9조는 이상적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내 견해론 일본은 이미 사과를 했다. 그것은 독일과는 다른 방식의 사과다. 독일은 피해국들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섬나라이고, 그런 일본의 사과가 평화헌법 9조라고 본다. 그것은 ‘우리는 앞으로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을 것이므로 다시는 다른 나라를 침공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약속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난해 콜린 파월 당시 미 국무장관은 도쿄에서 ‘평화헌법 9조를 개정하지 않으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진출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유지하고 군대를 다시 갖게 되는 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충고했어야 했다. 장= 당신은 일본의 ‘보통국가’로의 변신을 미국이 고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만약 미국이 없다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을 수 있는 병마개(장치)가 사라지는 셈이라고 말한다. 존슨= 미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막아주는 안전장치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지만, 그건 미 국방부의 선전논리에 불과하다. 오히려 반대로 미국은 일본이 군사대국화하는 걸 밀어주고 있다. 동아시아 전체를 조망해본다면, 한국에서 인도네시아까지 모두 ‘거대한 중국’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들이 또한 중국과 협력하는 법을 배워왔고 중국에서 돈을 벌고 있다. 오직 유일하게 이 현실에 껄끄러워 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중국의 발전을 위협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일본 경제성장의 일부는 대중국 수출을 통해 이뤄지는 게 사실이다. 이 기묘한 현실은, ‘중국이 일본을 필요로 하기 보다는 일본이 중국을 필요로 한다’는 말을 가능케 한다. 장= 많은 이들이 일본이 군사적이고 정치적으로 독단적인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걸 미국이 지원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데 왜 미국은 일본을 지원하고 있는가. 존슨= 미국의 일본 전문가들은 ‘우리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영국이 되길 원한다’고 말한다. 이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미국의 푸들이라면, 일본은 미국의 코커 스패니얼(애완용 개)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왜 사람들이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가. 그것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미국에 한표를 보태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 우리 시각에서 보자면, 일본이 군사대국화를 위해 오히려 미국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 일본은 이념적 보수화와 경제적 고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이 두 현상의 결합이 바이마르화 현상(독일에서 나치등장을 가능케 했던)표출되고, 이를 위해 미국의 지지를 활용하는 건 아닌가. 존슨= 물론 어떤 면에선 일본이 미국을 조종하는 측면이 있다. 군사적으로는 아니지만 재정적으로는 그렇다. 일본은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8천억달러의 일본 보유 달러가 미국의 지출을 지탱해준다. 미국은 일본의 공세적 변화를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틀렸다. 일본은 이렇게 생각한다. “미국은 자기가 로마제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걸 지탱할 능력이 없다. 우리가 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미국이 제국의 역할을 계속하길 원하는 한, 우리는 미국과 함께 갈 것이다.” 장= 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는 여전히 있는가. 아니면 중국의 부상에 대응한 미-일동맹의 모습을 계속 보게될 것인가. 그런 구도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장 “한국이 국제미아 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는데” 존슨“나는 한국이 올바른 방향을 취해왔다고 생각”
존슨= 미국의 네오콘들은 중국의 군사적 잠재력을 우려하고 있다. 오늘날 미 국방부엔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더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중동에서 너무 바쁘고 (병력이) 너무 넓은 지역에 전개돼 있다. 우리는 동북아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영국과 같은 존재를 원한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이해는 중국과의 협력에 있다. 동북아 평화에 대해 미국, 일본, 중국이 다 동상이몽을 하고 있기에 여기에 너무 현혹될 필요가 없다. 한국의 올바르고 자주적 주장이 좀더 현실적으로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전략적 게임을 펼치는 게 필요하다. 장= 동아시아의 질서와 관련해, 몇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미-일동맹과 중국이 대립하는 구도, 미-중 또는 미-일 공조 등이 있다. 한국은 이런 구도들을 우려한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자주적 외교정책을 내놓고, 또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그러나 한국이 그런 방향으로 너무 나가면 국제 미아가 될 위험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존슨= 나는 한국이 올바른 방향을 취해 왔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북한문제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서 벗어난 건 가장 옳은 방향이다. 북한이 자위를 위해서 핵무장을 추진한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체제 교체의 대상국 명단에 올려놓았다. 북한은 정확히 이에 대응해, 미국의 의도를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핵무장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의 상당수가 이 점에서 북한을 이해한다는 여론조사는 흥미롭다. 북한은 생존하기 위해 거칠게 대응해온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 불안정한 나라가 있다면 그건 미국이다. 미국은 당장 내일 파산할 지도 모른다. 지금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독려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우려하는 건 일본이 단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깨어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본은 자신들이 경제적·인구통계학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고, 정치체제는 작동하지 않고, 주변국들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일본은 핵무기를 개발할 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한국과 중국도 군사력을 증강시킬 것이다. 장=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에 우리는 좀 현실주의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한미동맹은 우리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같이 보이는데.. . 존슨= 미국을 조심해야 하지만 군사대국화의 일본과 이에 대응하는 중국 사이에서, 결국 미국은 한국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나라가 될 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시점에선 전쟁을 피하는 데 가장 큰 이해관계를 두고 있다. 문제는 중국이 한국의 분단에서 매우 큰 이익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중국은 최근 매우 영리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으로선 교역관계를 통해 모든 나라로부터 매우 매력적인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문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어떻게 보나. 이 문제에 대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존슨= 미국인들에게 미국이 왜 이스라엘과 그렇게 가까운지를 상기시켜라. 미국은 “홀로코스트(2차대전 때의 유대인 대학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건 전쟁이었고 우리는 유대인을 그렇게 많이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전범들을 매우 정력적으로 추적했다. 일본은 지금 난징에서 발생한 일(대학살)을 부인하고 있다. 한국은 “2차대전 당시의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일본만이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해야 한다. 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의 지식층은 미국에 “우리는 단지 화를 내는 사람들이 아니다. 역사교과서를 그냥 문제삼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2차대전 당시의 6백만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중요한 문제를 우리는 제기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미국 학생 중에 2차대전 때의 일본의 만행을 공부하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장= 북핵 문제로 가보자.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보나. 북핵이 미국과 북한간 군사적 갈등을 고조시키면서 동아시아 구도를 더 불안정하게 만들 것으로 보는가. 존슨= 핵 확산은 매우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의 협정(안전보장)을 맺어야 한다. 북한은 지금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 있다. 북한체제는 냉전의 패배자이다. 북한은 잘못된 방향에 서 있다. 평양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해답을 안다. 북한 문제는 내일이라도 미국 국무장관과 북한 외무상이 직접 만나면 풀릴 수 있다. 미국이 북한과 불가침협정을 맺고 대사를 교환하고, 핵시설 포기와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는 조건으로 정상적인 무역관계를 열겠다고 하면 문제는 풀린다. 장= 동아시아에서 다자안보 틀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미국이 이 다자안보 틀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없나. 존슨= 미국이 지난 50년간 반대해왔기에 동아시아에서 다자안보 틀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물론 (동아시아 국가들은) 다자안보 틀을 얘기하고 회의를 한다. 그러나 새로운 건 없고 “내년에 다시 회의를 열자”는 게 고작이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장군과 제독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들이 국무부를 점점 더 대체하고 있다. 이들은 민간부문의 동아시아 전문가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정리/박찬수 워싱턴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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