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식 주미 한국대사가 27일 오후(현지시각)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미국 지명위원회가 한국에 귀속된 것으로 표기했던 독도를 ‘주권 미지정’(Undesignated Sovereignty) 지역으로 변경한 것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의회도서관 등 독도 표기변경 가속도 예상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의 영유권을 ‘주권 미지정’으로 표기를 변경함에 따라 그 후속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우선 미국 정부기관의 독도 표기명 변경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지명위원회가 결정한 표준 지명이 강제성 없는 권고사항이긴 하나, 미 정부의 많은 기관이 독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사용하는 데 가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16일 “민감한 사안인데다 지명위원회와 주미 한국대사관 등으로부터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검색어 변경을 보류했던 미 의회도서관 등의 추가 조처가 예상된다.
이미 미국 연방항공청은 독도를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 연방항공청 웹사이트(www.faa.gov)에 소개된 국가별 지도 서비스에서 동해는 ‘일본해’로, 독도는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돼 있다고 한국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28일 밝혔다. 또 연방항공청 산하 국립 항공용지도 사무국(NACO)의 지도를 보면 ‘한국’이라는 항목에선 울릉도까지만 들어가 있고 독도는 빠져 있다. 독도는 리앙쿠르 록스라는 이름으로 ‘홋카이도·혼슈 북부·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이라는 항목에 들어가 있다.
캐나다의 유명 지도 제작업체 지오코르텍스도 2005년 3월 반크의 시정 요구를 받아 독도를 한국 땅으로 고쳤다가 28일 현재 다시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땅으로 변경한 상태다.
무엇보다도 지명위의 이번 결정으로 독도를 ‘분쟁 지역’으로 보는 미국 쪽의 태도가 공식화됐고, 이런 태도는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공인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지명위의 이번 변경조처는 독도, 다케시마, 리앙쿠르 록스의 혼용으로 인한 혼선을 막기 위해 ‘중립적인’인 ‘리앙쿠르 록스’로 표준지명을 결정했던 1977년 결정을 뒤늦게 현실화한 것이다. 지명위는 이번 조처에 대해 “미 정부 정책에 부합되도록 하기 위한 단순한 데이터베이스 정비작업”이라며 특별한 의미 부여를 배제했다. 이는 독도를 영토 분쟁 지역으로 보고 개입을 자제하는 중립적 태도를 보이는 미 국무부의 뜻을 반영하는 기술적 결정이라는 것이나, 이는 한국에게는 중대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명위는 77년 결정을 내리고도 그동안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토주권을 인정해 독도의 소속 국가를 한국, 또는 대양으로 표기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 쪽 주장만을 들어줄 수 없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번 조처는 △일본의 ‘학습지도 해설서’ 독도 영유권 주장 명기 방침으로 불거진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한일간의 최근 갈등과 △미 의회도서관의 검색어 변경 시도 등을 계기로 지명위원회의 생각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면서, 1977년 결정에 대한 재검토와 연구 끝에 내린 결론일 개연성이 크다.
한반도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은 최근 <넬슨 리포트>에 보낸 기고문에서 “국제사회는 독도 문제에 개입하기는커녕 한-일간에 그런 분쟁이 있는 것조차도 모른다”며 “계속 이런 상태를 유지하는 게 한국의 국익”이라고 말해, 독도의 분쟁지역화는 결국 일본의 의도대로 진행되는 것임을 드러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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