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열린 날’인 개천절에 한국 외교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건국 58년, 유엔 가입 15년 만에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을 사실상 확정한, 외교적 쾌거를 거둔 것이다.
북한핵 등 한반도 문제에 정통하고 한반도 주변 4강국과의 외교 경험이 풍부한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의 등장으로, 한반도 문제에서도 유엔이 좀더 크고 긍정적인 활동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3일 새벽(뉴욕시각 2일 오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치른 다음 유엔 사무총장 선거 제4차 예비투표에서 ‘선호’(찬성) 14표, ‘무입장’(기권) 1표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지난 7월24일 치러진 1차 예비투표 때부터 네차례 연속 1위다. 특히 거부권을 지닌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이 각각 파랑과 하양으로 용지 색깔을 구분해 처음으로 치른 이번 4차 예비투표에서 반 장관은 반대표를 한 표도 받지 않았다. 유일한 기권표도 비상임이사국이었다. 사실상 차기 유엔 사무총장으로 내정된 것이다.
이번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인도 출신의 샤시 타루르 유엔 사무차장은 개표 직후 후보직 사퇴 뜻을 밝히며 반 장관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앞으로 안보리의 단일후보 추천 및 유엔 총회의 인준 과정에서 반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리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전망이다.
4차 예비투표 직후 왕광야 주유엔 중국대사는 “오늘 투표 결과는 분명하고, 이를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존 볼턴 주유엔 미국대사도 “(반 장관은) 워싱턴과 뉴욕에서 훌륭하게 일해 온 매우 능력있는 분으로 존경한다”고 평가했다.
유엔 안보리는 오는 9일께 공식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추천할 단일후보를 정하게 된다. 안보리 추천 뒤 7∼10일쯤 뒤에 열리는 유엔 총회는 관례에 따라 다음 유엔 사무총장을 투표 없이 박수로 인준하게 된다. 유엔 총회의 인준 절차가 끝나면 반 장관은 유엔 사무국과 함께 인수인계 준비를 한 뒤 2007년 1월1일 취임해 5년 임기의 공식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반 장관은 유엔 총회의 인준 직후 노무현 대통령한테 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논리적으로는 공식 인준에 앞서 새로운 후보가 나서거나, 유엔 총회에서 비동맹국 중심으로 안보리의 단일 후보 추천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그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본다. 최영진 주유엔대사는 “이제 사실상 절차가 끝났다”며 “예측할 수 있는 또다른 것(변수)이 없다”고 강조했다. 반 장관은 유엔 안보리 공식회의에서 추천 후보로 결정되면 뉴욕으로 가서 총회 직전까지 지역의장 그룹을 비롯해 일반 회원국을 상대로 마지막 선거운동을 펼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반 장관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이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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