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4일(한국시각 15일 새벽)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6번째인 14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는 북핵, 전시 작전통제권, 자유무역협정(FTA) 등이었다. 이 가운데 전시 작통권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 회담으로 수그러들 수 있어 보인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내 일부 보수여론을 겨냥해 분명한 언급을 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 문제는 두 정상이 힘을 실어줄수록 오히려 논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두 정상의 언급 자체가 원칙론적이다.
북핵 문제는 한·미가 합의해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냐’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6자회담 재개 및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을 제시하면서, 그 주체를 한·미 두 나라로 한정하지 않았다. “6자회담 참가국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그 성패는 6자회담 장기 교착의 핵심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마주 앉아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6자회담 참가국들과 이 방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북-미 양자협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분위기를 가꿔나갈 계획인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9·19공동성명 이행을 논의하는 자리니 만큼 ‘6자 틀 안의 북-미 양자협의 가능’이라는 미국의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북-미 양자협의로 가는 ‘우회로’ 모색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 구상이 현실화하려면, “제재 모자를 쓰고는 6자회담에 나갈 수 없다”는 북쪽과, “불법행위에 대한 국내 법집행 문제”라는 미국 쪽 입장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우회로를 뚫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계좌 동결이라는 ‘의제 밖 문제’로 1년 가까이 악순환을 거듭해온 6자 회담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미완성 상태라고는 하지만 내용이 알려진 게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매우 복잡한 내용”이라고만 밝히고, 입을 닫았다. 한-미가 협의해온 방안은 9·19공동성명의 핵심인 북핵 폐기, 상호주권 존중 및 관계 정상화, 에너지·교역·투자 분야의 경제협력, 한반도 평화체제 등 중장기 비전이 주요 뼈대를 이루는 로드맵일 것으로 보인다. “9·19공동성명은 북한이 국제사회에 편입돼 아시아의 기적에 동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정상회담 결과 발표 문구는, ‘새로운 인센티브’가 있을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런 중장기 비전을 실행하려면 6자회담 참가국들의 상호신뢰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 이점에서 북쪽에는 △미사일 발사유예조처(모라토리엄) △영변 5㎽ 원자로 동결 또는 일시 가동중단 등이, 미국 쪽에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북한 방문 협의 △식량 등 인도적 지원 재개 △추가 제재 유예 △비디에이 조사 결과 조기 발표 및 문제 없는 일부 계좌 동결 해제 등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정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쉽지 않은 조합이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 노력의 공간을 넓히는 역동적 과정이 될 수 있다. 한-미는 중국 등과 조율을 거쳐 주도적으로 방안을 만들어가며, 대북 설득 및 북-미 양자 협의의 기회를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보수진영 ‘작통권 환수 반대’ 명분 약해져
“내가 한국인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의 안보에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14일(미국 현지시각)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이 한미동맹 약화와 미국의 감정적 대응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문을 꺼냈다. 작통권 환수 문제로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한국 현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우선 과시한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나아가 “이 문제가 정치적 문제가 돼선 안 된다는 노무현 대통령과 견해를 같이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국방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이에 대해 “작통권과 관련한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새로운 것이라기 보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는 지난 3월 체결한 ‘전시 작통권 환수 관련 약정’(TOR)을 통해 △한-미 상호방위조약 유지 △주한미군 지속주둔 및 미 증원군 전개 보장 △정보자산 등 한국군 부족전력의 지속적 지원 △연합대비태세 및 억제력 유지 등 4가지 원칙을 확인했는데, 부시 대통령은 이를 다시 한번 명확히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미군의 배치와 규모 같은 문제는 한국정부와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혀, 작통권 이양 뒤 주한미군의 일방통행식 조정은 없을 것임을 내비쳤다.
부시 대통령의 이런 언급에 따라 한-미동맹 와해와 안보불안을 이유로 전시 작통권 환수를 줄기차게 반대해온 한국내 일부 보수진영의 명분이 크게 흔들리게 됐다. 이들은 ‘오는 10월20일 열리는 한-미 연례협의회(SCM)에서 환수 시기만은 못박지 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쪽의 언급 등을 보면 이번 회의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환수시기가 정해질 전망이다. 특히 2008년말로 예정된 평택기지 이전사업 완료시기가 2010년으로 늦어질 것으로 보임에 따라, 실제 환수시기는 양쪽의 양보로 2010∼2011년께로 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도형 기자 aip209@hani.co.kr
협상시한 의견차…4차협상부터 속도낼 듯
이번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협상을 최대한 빨리 진행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협상시한에서는 양쪽간에 미묘한 입장차가 엿보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14일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에프티에이의 중요성, 그리고 이것이 한국과 미국 국민에게 주는 혜택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에프티에이 추진 의지를 재확인함으로써 협상단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기자회견 뒤 가진 오찬에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수전 슈워브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참석해 3차 협상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 한 참석자는 부시 대통령은 에프티에이에 대해 “가급적 빨리 성사시키자”고 말했고 노 대통령은 “상호이익을 실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송만순 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양국은 시간보다도 내용을 중시해서 협상을 하되 가급적 빨리 촉진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양 정상의 강조점이 조금 다른 것이다.
미국은 연말까지 협상이 끝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무역촉진권한(TPA·미 의회가 대통령에게 통상협상 권한을 위임한 제도) 시한 때문이다. 시한이 내년 6월말인 데다 석달전에는 협정문 가안을 의회에 넘겨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의회에 넘기기 전에 기존 법률과의 충돌, 주정부와의 관계 등 여러가지를 검토하려면 연말까지 끝내는 게 마음이 편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사정이 다르다. 김종훈 우리 쪽 수석대표는 13일 국회 보고에서 “내년 3월까지 협상을 한다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협상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면을 보면 미국 쪽 일정에 맞춰 졸속협상을 했다는 국내 여론의 칼날을 피해보려는 ‘계산’이 깔려있다.
어쨌든 우리 쪽도 미국의 사정을 무시할 수는 없는 만큼 10월의 4차 협상부터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3차 협상이 지지부진하게 끝나면서 4차 협상 전에 일부 분과가 중간회의를 하기로 한 것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양쪽의 공감대 때문으로 보인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그러나 이런 중장기 비전을 실행하려면 6자회담 참가국들의 상호신뢰 조처가 선행돼야 한다. 이점에서 북쪽에는 △미사일 발사유예조처(모라토리엄) △영변 5㎽ 원자로 동결 또는 일시 가동중단 등이, 미국 쪽에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북한 방문 협의 △식량 등 인도적 지원 재개 △추가 제재 유예 △비디에이 조사 결과 조기 발표 및 문제 없는 일부 계좌 동결 해제 등이 필요할 것이라는 게 정책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쉽지 않은 조합이다. ‘공동의 포괄적 접근방안’은 이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 노력의 공간을 넓히는 역동적 과정이 될 수 있다. 한-미는 중국 등과 조율을 거쳐 주도적으로 방안을 만들어가며, 대북 설득 및 북-미 양자 협의의 기회를 탐색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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