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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중 ‘대사 맞초치’…전랑외교 누그러뜨린 중, 한국에만 ‘늑대’

등록 2023-06-11 18:19수정 2023-06-12 02:41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해 11월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한 뒤, 한·중 외교당국이 상대국 대사를 ‘맞초치’하는 등 양국 외교 관계가 악화일로

를 걷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밀착하는 윤 대통령의 대외노선에 관례를 뛰어넘는 수준의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중국은 공세적인 대외전략을 뜻하는 ‘전랑(戰狼·늑대전사) 외교’를 누그러뜨리는 모습이었는데, 유독 한국에는 강경한 자세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많은 나라들과 달리 강대강 전략으로 임하는 한국에 대해 중국도 강공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중국 외교부는 11일 “눙룽 외교부 부장조리가 전날 정재호 주중대사와 ‘회동을 약속하고 만나’(웨젠·約見) 한국 쪽이 싱 대사와 이재명 야당 대표가 교류한 것에 부당한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교섭을 제기하고 심각한 우려와 불만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눙 부장조리는 정 대사에게 한-중 관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설명한 뒤 “싱 대사가 한국 각계 인사들과 접촉하고 교류하는 것은 그의 업무다. 이해를 증진하고 협력을 촉진하며 중-한 관계의 발전을 수호하고 추진하는 것이 목적”이라 주장했다고 중국 외교부는 밝혔다. 또한 “한국이 현재 중-한 관계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는지 되돌아보고 진지하게 대하길 바란다”며 “중-한 수교 공동성명의 정신을 성실히 준수하고 중국과 함께 양국 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 용어인 ‘웨젠’은 자국 주재 타국 외교관을 불러내 항의 등을 전달하는 것을 뜻한다. ‘자오젠’(召見·불러서 만나다)에 비해선 수위가 낮지만, 한국 외교 용어로는 ‘초치’(招致)에 해당한다.

앞서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지난 9일 싱 대사를 초치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고 한국 외교부가 밝혔다. 지난 8일 싱 대사가 이재명 대표를 대사관저로 초청한 자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발언한 이후 양국 외교당국이 차례로 항의를 주고받은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지난 8일 저녁 서울 성북구 중국대사관저에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만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한·중 외교당국이 상대국 대사를 맞초치하고 거친 언사를 주고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4월20일 “(대만해협의) 긴장은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우리는 국제사회와 함께 힘에 의한 현상 변경에 절대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로이터> 인터뷰 발언이 나온 뒤 한·중은 상대방 대사를 서로 초치했다. 윤 대통령은 “대만 문제는 단순히 중국과 대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북한 간의 문제처럼 역내를 넘어선 전세계적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도 했다.

중국 외교당국이 이처럼 날 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최근 들어서는 드문 일이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 3기를 시작한 이후 전랑외교를 자제해왔다. 중국은 상대적으로 온건파로 평가받는 셰펑 외교부 부부장을 주미대사로 발탁했다. 또 다른 나라들의 ‘반중 발언’을 거칠게 비난하며 유명해진 자오리젠 외교부 대변인을 교체하는 등 과거와 바뀐 모습을 보였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중국이 과거 펼쳐왔던 전랑외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노선 수정을 한 상황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은 최근 한국에는 전랑외교를 연상시키는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는 등 중국을 압박하는 대외 관계 노선을 채택한 동시에,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는 대만 문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는 “중국의 외교 스타일이 바뀌었어도 대만 문제 등 핵심 이익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입장 변화가 없고,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는 발언을 이어왔기에 중국으로서는 ‘지금은 수사 정도지만 앞으로는 더욱 강하게 대응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계속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과 대립했던 국가들조차 대중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이번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을 포함해 친강 중국 외교부장 등 중국 고위 관료들을 만날 것이라는 외신이 잇따르고 있다. 중국과 갈등을 빚었던 오스트레일리아(호주)도 돈 패럴 통상부 장관이 지난달 11일 4년 만에 베이징을 방문해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만나 무역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중국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고 전망한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장은 “전세계에서 오직 한국만이 대중 억제와 압박의 최전선에 서서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며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내 엘지(LG)디스플레이 광저우 공장을 찾는 등 여러차례 한국에 우호적인 신호를 보내왔으나 이제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고 한국을 억제하고 압박하는 전략으로 전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형철 김미향 기자 newir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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