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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악순환 고리’에 갇힌 한반도…북, 예상 깨고 연이틀 무력시위

등록 2022-10-19 21:02수정 2022-10-20 02:40

중국 당대회 와중에도 포격
“9·19 합의 파기 부추겨…
정부, 위기상황 관리 나서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하고 기념강의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중앙간부학교를 방문하고 기념강의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의 대남 무력시위에 남쪽이 군사적 대응에 나서고 다시 북의 대응이 이어지면서, 한반도 정세가 자칫 일촉즉발로 치닫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혔다.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2018년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합의’가 힘을 잃게 되면, 한반도 위기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은 18일 밤과 19일 오후 이틀 연속 동·서해로 포병 사격을 했다. 북쪽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19일 대변인 명의 발표에서 “적들은 18일 9시55분부터 17시22분까지 남강원도 철원군 전연(전방) 일대에서 수십발의 방사포탄을 발사하였다. 전연 일대에서 연이어 감행되는 적들의 군사적 도발 행위로 조선반도의 정세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적들의 북침 전쟁연습인 ‘호국 22’가 광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시기에 감행된 이번 도발책동을 특별히 엄중시하며, 다시 한번 중대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대응조처라고, 북쪽의 포격을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북한이 언급한 포 사격 훈련은 9·19 군사합의를 어기지 않았고, 이전부터 줄곧 시행된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북쪽은 18일 밤 강원도 장전 일대와 황해도 장산곶 일대에서 동·서해상으로 250여발의 포병 사격을 했다. 지난 14일 새벽과 밤 방사포 560발을 동·서해로 쏜 데 이은 반복된 무력시위다. 특히 이날 북한이 쏜 포탄은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른 해상완충구역에 떨어져, 14일 2차례에 이어 9·19 군사합의를 또 위반했다고 합동참모본부(합참)가 설명했다. 북한은 19일 낮 12시30분께에도 황해남도 연안군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100여발의 포병 사격을 했고, 포탄은 해상완충구역에 떨어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북한이 9·19 합의를 어기는 포격을 계속하면서도 9·19 합의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앞으로 한국이 9·19 합의를 파기할 경우 책임을 전가하고 비난을 회피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남한이 9·19 군사합의를 먼저 파기 선언하도록 부추겨 정세 악화의 책임을 남쪽으로 넘기고 국지 분쟁이나 7차 핵실험 등에 나서기 위한 명분을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 국내외 전문가들은 북한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할 중국 20차 당대회 기간(16~22일)에는 무력시위를 자제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북한은 이 기간에도 무력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최근 북한의 포 사격을 두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로버트 매닝 스팀슨센터 선임연구원은 “이번 포 사격 의도는 ‘가짜 위기’를 유발하고 한-미 훈련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분노를 표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7차 핵실험을 하지 말라는 중국의 압박에 대해 (북쪽이) 어느 정도 불만을 표시한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탄도미사일 발사와 달리 최근 포격 훈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 사안이 아니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에 부담을 덜 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무력시위와 남쪽의 군사적 대응이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악순환으로 접어들어 남북 간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우려한다. 실제 지난 14일에 이어 18·19일에도 북한이 쏜 포탄이 동·서해 완충구역에 떨어지면서, 남북 전투기들이 대치하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이어지고 있다.

김창수 전 청와대 통일비서관은 “남과 북이 서로 강경하게 맞서면서, 무엇이든 그야말로 ‘도화선’이 될 수 있는 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설령 북쪽이 위반하더라도, 지금으로선 제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9·19 군사합의 유지를 통해 어떻게든 양쪽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는 신뢰장치를 가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북한이 쏜 포탄들이 동·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지 않고 북한 쪽 바다에 떨어지고 있다. 군 당국은 만약 북한이 쏜 포탄이 북방한계선 이남 한국 쪽 바다에 떨어지면, 넘어온 북한군 포탄 수만큼 북방한계선 이북 북한 쪽 바다에 대응사격을 한다는 방침이다. 이 경우 백령도 해병대의 케이(K)-9 자주포 등이 대응사격을 하고, 육·해·공군 합동지원세력도 대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의 군사적 대응이 맞물려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양쪽의 우발적 군사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16일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을 찾아 현장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북한의 직접적 도발이 발생할 경우 추호의 망설임 없이 자위권 차원의 단호한 초기대응을 시행하는 현장 작전종결태세를 갖출 것”을 강조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지금은 정부가 위기 고조가 아니라 위기 상황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김정섭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북쪽의 최근 행태는 단발성으로 끝날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미의 군사적 대응 등을 명분 삼아 7차 핵실험까지 나아갈 수 있는 상황일 수 있다”며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약속도 있으니, 정부도 과잉대응하지 말고 위기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철 nura@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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