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친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참배 빠진’ 조문 외교, 찾아간 한-일 약식 회담, 북한 문제 빠진 유엔 총회 연설, 48초 한-미 정상 만남, 미 의회 비하 욕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과 한-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관계 개선과 통상 불이익 개선 등을 목표 삼아 나선 윤석열 대통령의 순방은 상식을 벗어난 장면들이 연속극처럼 펼쳐졌다. 이전 대통령들의 외국 순방 때도 곡절과 시행착오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 윤 대통령 순방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50년 “정상회담(Summit)에서 일이 더 나빠지기는 쉽지 않다”고 말할 만큼 정상회담은 자체가 곧 ‘성공’이었다.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게 국제 외교 무대의 정설로 통할 정도다. 정상회담 자체가 양국 사이의 철저한 사전 준비와 빈틈없는 조율 뒤 열리기 때문에 아무리 못 해도 어느 일방이 본전을 ‘까먹을’ 가능성은 희박한 까닭이다.
하지만 이번 순방 중 열린 한-일, 한-미 정상회담은 각각 ‘정상회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한 ‘약식’ 회담과 상견례에 가까운 만남에 그쳤다. 윤 대통령의 ‘약식 회담’과 ‘만남’은 왜 실패했을까.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윤 대통령이 외교를 가볍게 여겼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외교 초보인 윤 대통령이 외교를 우습게 보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공부하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으니 밑(실무자)에서도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외교는 프로토콜(의전)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교에서 의전이 무너지면 국격도 무너진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참배는 “현지 교통 사정 때문”에 불발됐고, 강제 동원 문제에서 피해자격인 한국 대통령이 순방에 동행한 한국 기자들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가해자격인 일본 총리의 행사장을 찾아가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일 약식 회담 소식은 윤 대통령을 ‘발견’한 일본 기자의 에스엔에스(SNS)에서 먼저 알려졌다.
오태규 전 오사카 총영사는 “만남 형식에서도 일본에 끌려갔다. 우리는 약식 회담이라 하고 일본은 ‘간담’이라고 표현하는 모욕적 상황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한-일관계를 문재인 정부가 망쳤다는 대일 외교 출발점에서 국민 설득 없이 (서둘러) 한-일 협상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국익과 대북 정책 등을 세계 정상에게 알릴 유엔 총회라는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도 윤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어설픈 실수들이 반복된 핵심 원인이 ‘자유’와 가치’라는 모호한 기조를 내건 ‘외교 아마추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라는 것이다. 외교안보 부서에서 실장급 직책을 맡았던 한 인사는 “정상 외교는 양국 간 이익의 균형·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구체적 국익 대신 추상적인 자유와 가치 연대를 주장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미국 편중 사고가 파행의 근원이란 분석도 있다. 과도하게 한-일 정상 만남에 집착한 것도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의 환심을 사려 과속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혜정 중앙대 교수는 “윤 대통령의 외교 메시지 관리가 실패한 것은 인식체계가 없기 때문이다”라며 “전략적이고 근원적인 대미 외교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가면 윤 대통령의 가치 외교는 낭떠러지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신형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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