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2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와 기업의 대법원 판결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한 민관 협의체가 다음달 4일 출범한다.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진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선제 행보인데, 일본 쪽의 상응조처가 나올 것인 지가 관건이다.
29일 외교 소식통의 말을 종합하면, 외교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차관이 주재하고 학계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다음달 4일 첫 회의를 열기로 했다. 애초 외교부 쪽은 이달 안에 협력기구 출범을 추진했지만, 참여자 인선 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시기가 늦춰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단기간에 집중적인 토론을 거쳐 해법을 마련하기로 하고, 협의체 내부 논의 과정에서 피해자 및 지원단체와도 적극 소통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외교부 쪽은 협의체 출범 첫 회의에 피해자 지원단체 관계자들의 출석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협의체의 성격과 활동 방향, 참여자 등에 대해 아무런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당사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협의체 출범 이전부터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의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고 추후 일본 쪽에 청구하는 이른바 ‘대위변제’가 유력한 해법으로 떠오른 것도 피해자 쪽의 거부감을 부르고 있다. 한-일 양국 기업 또는 기업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참여로 조성된 기금으로 피해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럴 경우, 일본 정부와 전범 기업의 기금 참여 여부가 핵심이다.
결국 협의체의 성패는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 여부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이 일제 강점기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뒤 일본 정부 쪽은 “징용공(강제동원)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 한국 대법원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며, 관련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또 한-일 관계 개선의 전제로 이 문제 해결을 내세우며, 미쓰비시 등 전범기업과 피해자 간 직접 대화도 가로막아 왔다.
피해자 및 지원단체는 “일본 쪽의 상응조처 없는 일방적 양보로 흘러선 안된다”고 강조한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대법원 판결의 정신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고, 그와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과 외교적 보호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대법원 판결 따라 피해자가 가해 전범기업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본 정부를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어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풀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한-일 양국 정부와 기업이 각각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며 “일본 쪽이 변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상수로 두고 ‘대위변제’를 추진한다면, 피해자들이 수십년 싸워 이뤄낸 대법원 세계사적 판결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는 일본 쪽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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