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누리집 갈무리
유엔 인권 전문가가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히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국제인권법 기준에 맞게 수정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유엔의 우려가 국회 언론중재법 수정 논의에 어떻게 반영될지 주목된다.
1일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누리집에 공개된 이레네 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8월 27일치 서한을 보면 칸 보고관은 “내가 입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정보에 따르면 이 법안 내용에 추가적인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정보와 언론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심각히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국내 비영리 인권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지난달 24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내용이 세계인권선언 및 자유권규약 규정을 위반했다’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진정을 냈고 이에 대한 답신의 성격이다.
칸 보고관은 우선 한국 정부도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가입한 만큼 제19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의사·표현의 자유를 존중·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당국의 의도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 구축'에 있다. 그러나 수정 없이 채택되면 새 법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심각히 우려한다”고 밝혔다.
그는 ‘법률의 적법성’ 측면에서 2017년 유엔 특별보고관이 발표한 ‘표현의 자유와 가짜 뉴스, 허위 정보 등에 대한 공동선언’을 언급하며 정보와 사상을 전할 인간의 권리는 정확한 주장에 한정돼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허위 정보에 제한이 적법성을 인정받으려면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9조 3항이나 20조와 ‘밀접하고 구체적인 연관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조 3항은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권리”나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 등을 위해 필요할 경우에만 “법률에 의해 규정”되는 형태로 “일정한 제한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20조에서는 “전쟁을 위한 선전”,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를 금지하고 있다. 칸 보고관은 “이런 맥락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당국에 과도한 재량을 부여해 독단적 이행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고 썼다.
‘법률의 필요성’ 측면에서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언론사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해 징벌적 배상을 매기도록 한 ‘허위 조작보도에 대한 특칙’ 속 “매우 모호한 표현”이 “언론보도와 정부·정치지도자·기타 공적 인물에 대한 비판, 인기가 없거나 소수 의견을 포함해 민주사회에 필수적인 광범위한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가 내년 3월 한국의 대선을 앞두고 정보 접근과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이 특히 중요한 시기에 더 부각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더해 “언론인들이 유죄 추정을 반박하기 위해 취재원을 누설하도록 강요받을 수 있으며 이는 언론 자유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패러디나 유머 차원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보도하거나 정보의 허위 여부를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에도 책임을 지울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또 “과도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언론의 자기 검열을 초래하거나 공익을 둘러싼 중요한 토론들을 억압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완전히 불균형적”이라고 지적했다.
칸 보고관은 정부가 이 우려를 국회의원들과 공유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제인권법, 특히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9조의 적법성, 필요성, 비례성 측면에서 정부의 책무와 어떻게 일치하는지 설명을 요청했다. 또 법 개정안을 국제인권법 기준에 맞게 수정할 것을 촉구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유엔 특별보고관의 우려는 지난 30일 더불어민주당에도 전달됐고 그날 강행 처리를 시도하려는 강경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유엔 특별보고관의 활동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인권이사회에 보고된다. 유엔의 이번 권고는 오는 26일까지 진행될 국회 언론중재법 협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