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인 ㅎ씨가 코이카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쪽으로부터 받은 직업훈련 교사 연수 수료증. ㅎ씨 제공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 일한 아프간인 390명이 무사히 탈출한 가운데, 한국과 인연을 맺었지만 이송 대상에 속하지 못한 아프간인 수십명이 여전히 애타게 한국 정부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26일 <한겨레>와 연락이 닿은 33살의 아프간 남성 ㅎ씨는 “한국 정부에 우리는 매우 두렵고 (우리를) 뒤에 남겨진 느낌(left behind)이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가 2004년 아프간 지원 사업으로 설립한 ‘한-아프간 직업훈련원’에서 컴퓨터 교사로 12년간 일했다. 자동차정비, 컴퓨터, 건축 등 7개 분야의 과정을 운영하는 이 훈련원을 거쳐간 아프간인은 7000여명에 달한다.
ㅎ씨가 <한겨레>에 메신저로 제공한 자료를 종합하면, 그는 지난 5일 주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에 전자우편을 보냈다. 여러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아 택한 방법이었다. 자신들을 한-아프간 직업훈련원에서 5~16년씩 일한 교사들이라고 소개한 그는 교사 대표 4명과 대사의 면담을 요청했다. 미국 정부의 경우 자신들과 직·간접적으로 일한 아프간인들의 철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ㅎ씨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인 만큼 자신들은 고국에 있는 것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고 썼다. 아프간 상황이 나날이 악화하고 있는데 한국 쪽 사업에 관여했던 자신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 대사관은 직업훈련원에서 근무했다는 증빙 서류를 보내면 검토 뒤 연락하겠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이에 ㅎ씨는 자신이 포함된 33명의 이름과 신원 정보가 명기된 직업훈련원 증명서를 발급받아 14일 대사관에 보냈다. 하지만 이때는 탈레반의 수도 카불 진입이 임박한 시점이었고 대사관은 15일 잠정 폐쇄됐다. ㅎ씨는 이후 대사관 쪽과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26일 처음 이들의 소식을 <한겨레>에 전한 국제인권활동가 김여정씨는 “하루 이틀 내로 이들을 구조하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 제발 이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말했다. 26일 저녁 7시께까지 현지에 남아 있던 한국군 수송기 2대에 이들을 태우는 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여긴 그는 이날 하루 종일 외교부와 취재진, 현지인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들의 사연을 알렸다.
김씨는 26일 오후 3시 넘어 외교부로부터 공식 입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외교부는) 이들이 한국 정부와 근로계약(을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근무한 직업훈련원은) 아프간 정부에 위탁해서 운영한 것”이어서 “(이들의 경우 국내 이송) 대상에서 배제됐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ㅎ씨 등이 일했던 직업훈련원은 코이카가 2002년부터 2005년까지 1236만여달러(약 144억원)를 들여 설립·운영한 곳이다. 문을 연 2004년부터 이듬해까지는 코이카에서 직접 운영했지만, 2006년에는 아프간 정부로 사업을 이관해 지금껏 아프간 정부에서 운영해오고 있다. ㅎ씨와 동료 교사들은 아프간 정부에 고용됐던 것이다. 그간 정부에서 밝힌 국내 이송 대상은 아프간에서 한국 정부의 활동을 지원해온 이들로, 대사관 및 한국 정부가 현지에서 운영하는 병원과 직업훈련원 등에 직접 고용됐던 아프간인들이었다.
하지만 ㅎ씨가 <한겨레>에 보낸 직업훈련원 증명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7년까지 교사 22명이 많게는 세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ㅎ씨의 2013년 ‘코이카-산업인력공단 연수’ 수료증 및 한국방문 비자와 함께 놓고 보면 이들도 같은 연수의 일환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설립하고 지원하는 시설에서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 이들에겐 한국과 인연이 혼돈에 빠진 아프간을 탈출할 마지막 희망인 셈이다.
김씨는 “(직업훈련원은) 초기 2년 한국이 운영할 때 훈련시켰던 직원들이 이양받아서 그대로 운영”하고 있으며 “직원훈련원 졸업식에는 항상 (한국) 대사가 참석하고 코이카로부터 펀딩”도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현대차 직원만 데려오고 사내하청 직원은 안 데려오는 꼴”이라며 한국 정부의 이송 대상 선정 기준을 비판했다.
한국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김씨에 따르면 한국 대학에 각종 장학금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대학생 수십명도 9월 새 학기를 앞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이들 역시 대사관에 전자우편을 보내 현지에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없는 사정을 알리며 자신들도 함께 철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26일(현지시각) 저녁 카불국제공항 인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들이 기대하던 ‘기적’(현지 조력자 국내 이송 군 작전명)은 더 요원해진 분위기다.
김씨는 27일 “혹시나 한국에서 (자신들을 태우러) 또 올까봐 (직업훈련원) 교사들이 기다리다가 새벽부터 모두 이웃 나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재 파키스탄 국경도 넘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국경을 넘기 위해 금전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파악한 직업훈련원 교사 등 한국과 인연을 맺었고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만 수십명이다.
앞서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만일 이후에 추가로 한국행을 희망하는 아프간인이 있을 경우에는 과거의 고용관계, 신원 등을 감안해서 지원 여부 및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