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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이역만리 카자흐에서 숨진 ‘독립 영웅’ 홍범도, 78년 만에 고국 품으로

등록 2021-08-12 17:39수정 2021-08-17 19:52

친일 인사 처단하며 ‘날으는 홍범도’ 별명
무장투쟁 승리의 역사 ‘봉오동전투’ 이끌어
“졸병 차림에 왜놈 잡을 장총만 지닌 장군”

고려인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까지 밀려나
극장 수위장으로 일하며 고려인의 큰 어른 역할
문 대통령, 2019년부터 봉환 노력 결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인 15일 저녁 한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공원의 홍범도 장군 흉상. 크즐오르다/연합뉴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광복절인 15일 저녁 한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공원의 홍범도 장군 흉상. 크즐오르다/연합뉴스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올해 광복절을 맞아 서거 78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홍범도 장군은 지난 1943년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서울에서 5000㎞ 떨어진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묻혔었다.

청와대는 12일 광복 76돌을 맞는 15일 밤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되어 있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서울에 도착한다고 밝혔다. 구한말이던 1868년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 장군은 국운이 기울어가던 1895년 강원도 회양에서 봉기해 일본군을 사살하며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사냥꾼으로 활동하던 홍 장군은 대한제국이 을사조약·정미조약 등으로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하자 1907년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를 결성했다. 이후 일본군 30여명을 살상한 후치령 전투 등 수십차례 일본군과 격전을 치렀다. 친일 관리와 부호 등을 처단하고 일본인 금광을 습격해 금괴를 빼앗아 군자금으로 활용하는 등 대담무쌍한 활동을 벌여 ‘하늘을 나는 홍범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1910년 8월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긴 뒤 홍 장군은 간도와 연해주로 활동무대를 옮겨 활동을 이어갔다. 홍 장군은 3·1 만세운동 이듬해인 1920년 독립 무장투쟁사에서 가장 빛나는 승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지는 봉오동 전투를 이끌었다. 당시 홍 장군은 “언제나 계급장도 없는 졸병과 같은 차림이었고, 지휘도나 권총 대신 왜놈 잡을 장총 두 자루를 지니고 다녔다”(<간도독립운동소사>)고 한다.

하지만, 독립세력의 거점이던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압박이 강해지자 홍 장군은 독립군세를 키우기 위해 러시아 영토로 이동했다가 한인 무장세력간 분쟁으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1921년 ‘자유시 참변’을 겪었다. 소련 공산당은 이 사태 이후 한인 무장세력을 강력하게 통제했고, 1937년에는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홍 장군 등 9만6천여명의 고려인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로 이주당했다. 홍 장군은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고려극장 수위장을 하면서 고려인들의 큰 어른 역할을 하다, 가족과 동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5살에 숨을 거뒀다.

국권 침탈과 뒤이은 무장 독립투쟁과 고려인 강제이주까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은 그동안 정부의 숙원이었다. 정부는 1992년 카자흐스탄과 국교를 맺은 뒤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추진해왔다. 김영삼 정부 시절 1995년 한 차례 봉환이 시도됐지만, 북한이 카자흐스탄 정부에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란 점을 들어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해를 어디로 봉환할지를 둘러싸고 남북의 이견이 표면화 되자 카자흐스탄 정부나 현지 동포 사회는 난처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의 모습. 연합뉴스
1922년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홍범도 장군의 모습. 연합뉴스
동포들이 선뜻 유해 봉환에 나서지 못한 또다른 이유는 장군의 존재가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에서 ‘정신적 구심점’ 구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크즐오르다에 장군의 묘역을 조성한 뒤 ‘민족 지도자’로 기려왔다. 카자흐스탄 정부 역시 1994년 ‘홍범도 장군 거리’를 선포할 정도로 장군을 존중해 왔다. 유해 봉환에 동의해야 하는 장군의 후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점도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했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4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유해 봉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빚어 문 대통령은 지난해 3·1절 기념사를 통해 유해 봉환이 결정되었다고 밝힐 수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6월7일)을 기해 홍 장군을 모시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안타깝게 코로나 상황으로 봉환이 연기되어 오다가 이번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유해 봉환을 위해 14일 황기철 국가보훈처장을 특사로 하는 특사단을 카자흐스탄에 파견할 예정이다. 특사단에는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암살>과 <대장 김창수> 등 여러 독립운동 영화에 출연한 배우 조진웅씨가 국민대표 자격으로 참여한다. 15일 저녁 고국에 도착하는 홍 장군의 유해는 16~17일 국민추모기간을 거친 뒤 18일 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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