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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한일 ‘과거사·수출규제’ 조율 와중에…‘망언’이 판 깼다

등록 2021-07-19 19:36수정 2021-07-20 02:43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19년 12월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두/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019년 12월24일 중국 쓰촨성 청두 샹그릴라 호텔에서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두/연합뉴스

청와대가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접은 데는 결국 양국 첫 정상회담의 ‘성과’를 둘러싼 양쪽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판 돌출 변수로 떠오른 주한일본대사관 고위 관계자의 망언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대응이 흡족한 수준이 아니었다는 판단도 작용한 모양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의 회담 무산의 배경으로 거론한 이유는 두가지다. 한-일 간 협의 내용이 “정상회담의 성과로 삼기에는 여전히 미흡”한 점과 “그 밖의 제반 상황”이다.

앞서 이날 오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배포한 서면 브리핑과 같은 맥락이다. 한-일 양국이 오는 23일 도쿄에서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는 일본 <요미우리신문>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현재 양국이 협의하고 있으나 여전히 성과로서 미흡하며, 막판에 대두된 회담의 장애에 대해 아직 일본 측으로부터 납득할 만한 조치가 없는 상황이어서 방일과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고 밝혔다. 이날 아침부터 정부 안팎에서 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오간 것으로 볼 때, 서면 브리핑은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회담이 성사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외교적 협의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번 회담의 ‘성과’로 2019년 7월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해 취한 ‘수출규제 조치 철회’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철회하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완전한 복원 방안을 제시했다고 전해진다. 반면 일본은 한국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2018년 10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에 대한 구체적 해법을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 과정에서 과거사 현안에 대해서는 ‘지속적 대화를 통한 협의’를 이어가면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푸는 쪽으로 일정 정도 의견이 조율되는 분위기였다고 하나, 결국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궁극적인 목표는 관계 복원”이었다며 “전반적으로 조금씩 진전은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방일 불발의 결정적 요인은 성적인 표현을 동원해 문 대통령의 방일 의지를 폄훼한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의 발언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 대응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소마 공사의 즉각적인 본국 송환 등 ‘가시적이고 응당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일본 정부는 “유감” 표명을 반복하면서도 구체적 조처는 취하지 않았다. 가토 가쓰노부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소마 공사의 경질 문제에 대해서는 “인사에 대해서는 외무상이 (주한일본대사관) 재임 기간 등을 고려해 적재적소의 관점에서 판단할 것”이라고만 했다. 애초 문 대통령의 방일을 둘러싼 반대 여론이 높았던 상황에서 소마 공사의 발언 이후 국내 여론이 더욱 악화한 점도 무시하지 못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날 아침 <요미우리신문> 보도 등을 통한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도 ‘판’이 깨지는 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분석이다. 이전에도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위안부와 징용공을 둘러싼 배상 문제에서 타협하지 않아 문 대통령을 ‘특별대우’하지 않을 방침이다” “문 대통령을 포함해 정상 간 회담 시간은 1명당 15분 정도가 될 것이다” 등 한국 정부를 떠보거나 자극하는 보도를 지속적으로 내놓았고, 이에 한국 정부는 “양국 외교당국 간 협의 내용이 일본 정부 당국자 등을 인용해 일본의 입장과 시각에서 일방적으로 언론에 유출되고 있는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현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로써 세계적 축제인 올림픽을 한-일 관계 복원의 계기로 삼으려던 문재인 정부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지난달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당시 일본의 사정으로 한-일 정상 간 약식 회담이 실패한 상황에서도, 차기 정부에 악화한 한-일 관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시도까지 불발된 탓이다. 일각에서는 애초 청와대가 ‘성과’를 고집하며 불가능에 가까운 ‘거래’를 성사시키려 한 게 잘못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찌됐든 문재인 정부 임기 내 한-일 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한편, 20일 오후에는 도쿄에서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모리 다케오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양자 협의가 예정되어 있어 한-일 정상회담 무산과 소마 공사 조처 등과 관련한 논의가 어떻게 이뤄질지 주목된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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