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31일 탈북자의 ‘배수로 월북’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병대 2사단장을 보직 해임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이날 최근 탈북자의 월북 사건과 관련해 “지휘책임이 있는 해병대사령관과 수도군단장은 엄중 경고하고, 해병대 2사단장의 보직해임을 포함해 지휘책임 계선에 있는 직위자 및 임무수행상 과오가 있는 관련자에 대해 징계위에 회부해 엄중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화도 해안·강변 경계 작전은 해병대 2사단 관할이며, 해병대 2사단은 수도군단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합참이 이날 밝힌 대비태세 검열 결과를 보면, 탈북자 김아무개(24)씨는 그동안 알려진 대로 18일 오전 2시46분께 인천 강화도 연미정 인근 철책선 아래 배수로를 통해 한강 하류로 빠져나간 뒤 조류를 타고 헤엄쳐 약 74분 만인 오전 4시께 북한의 개풍군 탄포 지역 강변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합참 검열단은 연미정 소초의 감시카메라 녹화 영상에서 김씨로 추정되는 표적이 한강을 건너가는 모습을 5차례 식별해냈으나, 당시 경계병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 합참 관계자는 “당시 월광이 11~15%밖에 안되고 구름이 낀 밤이었다. 감시카메라 영상이 워낙 흐릿한 데다 강에 통나무나 스티로폼 등 부유물도 떠 있어서, 경계병들이 김씨를 식별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열상감시장비(TOD)도 한강 건너편 북한 쪽 강변에서 김씨로 추정되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2차례 포착했으나, 당시 경계병들은 이를 북한 주민의 일상적 행동으로 여겨 김씨의 월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가 이날 연미정 인근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전 2시18분이었다. 당시 연미정 소초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김씨가 택시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합참 관계자는 “평소에도 그 시간 대에 종종 주민들이 택시를 타고 와 내리곤 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계병들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씨가 한강으로 빠져나갈 때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미정 인근 배수로는 1.84m(가로)×1.76m(세로) 크기로 안쪽에 철근 저지봉 10개가 세로로 박혀 있고 그 뒤쪽엔 윤형 철조망이 둘러쳐 있었으나, 사람이 빠져나가기엔 어렵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합참 관계자는 “배수로에 물이 무릎 높이 정도 차 있었다. 김씨가 철근 저지봉을 절단하거나 훼손한 흔적은 없었고 윤형 철조망만 빠져나갈 때 한쪽으로 밀어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 경계병들은 매일 아침 저녁으로 두 차례 철책의 이상 유무를 점검했지만, 배수로 점검은 하지 않았다. 합참 관계자는 “배수로의 철근 저지봉과 철조망이 낡아 제 구실을 못하는 상황인데도 일상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문제점이 식별됐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 전선의 배수로를 점검해 미비점이 있으면 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수로 근처에서는 김씨가 월북하면서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백팩 형태의 가방이 발견됐다. 합참 관계자는 “안에는 은행통장과 비닐랩, 성경책, 구급약 등이 들어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월북 전날인 17일 오후 6시25분~7시40분 사이에 자동차로 교동도와 강화도 해안도로를 지나간 것이 교동검문소 폐회로텔레비전 등에 포착됐다. 군 당국은 월북 지점을 확인하기 위한 사전 지형정찰로 추정했다.
애초 북한 개성시 개풍면 해평리에서 농장원으로 근무하던 김씨는 3년 전인 2017년 7월 월포해안에서 한강을 건너 김포 조강리 해병초소로 탈북해 김포에 정착했으나, 최근 성폭행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김씨의 재월북 사실은 북한 매체가 26일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탈북자가 분계선을 넘어 귀향해 왔다”며 개성시에 방역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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