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지시로 남북관계가 칼날 위에 선 듯한 시기에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북-미 관계와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로운 국면이어서인지 김 장관의 입은 무거웠고 답변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김 장관은 ‘금강산 시설’ 문제를 풀려면 남북 당국자의 직접 대면 협상이 필요하다며 북한을 계속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 처리’를 공언한 만큼, 만나서 풀 수밖에 없을 거라는 전망도 내놨다. 김 장관은 이 협상 기회를 활용해 원산~금강산~설악산을 묶어 동해안 일대에 남북 공동의 관광지대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김 장관은 한반도 정세의 엄중함도 강조했다. 북한을 향해 “남북관계를 묶어놓고는 북-미 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나아가긴 어렵다”며 “남북관계의 공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정부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준비가 돼 있으며 북한이 적극적으로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 김 장관은 북한과 미국 모두 ‘시간은 내 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터뷰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통일부 장관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 남북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것이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김정은 위원장 지시의 핵심은 세가지입니다. 첫째는 ‘금강산을 국제관광지대로 만들겠다, 그러니 노후시설을 철거해 달라’는 것이고요. 둘째, 다만 이 철거는 합의해서 처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남한 주민들이 온다면 환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잘 파악해서 대응해야 합니다. 2008년 관광 중단 이후에 여러 조처들이 있었습니다. 현대아산 독점권 취소도 있었고요. 그런데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통해서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 조건 없이 재개하자 한 것이죠.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가 있었다면 관광 재개 방안이 모색됐을 텐데, (결렬 이후) 남북이 협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금강산 시설 철거 문제와 관련해 북한은 ‘문서 교환’ 방식 협의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금은 ‘합의 처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합의 처리의 핵심은 결국은 남쪽 기업의 재산권 보호입니다. 관광이 중단된 지 12년째고, 그 전부터 활용되지 못했던 시설들도 적지 않습니다. 재산권 보호를 전제로 해서, 금강산 관광 사업자들도 새로운 조건이 조성된다면 재정비를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있습니다. 남북이 만나게 되면, 그런 사안들을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북한이 문서교환 방식으로 하자는 것은 ‘철거의 일정과 계획’입니다. 그런데 일부 시설을 재정비하는 것만 해도 현장 실사가 필요합니다. 정확하게 현재의 상태를 봐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있거든요.”
― 북한을 설득해서 실무회담에 나오게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하여튼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 김정은 위원장이 제기했던 세가지 기본 입장을 놓고도 북한과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의 현재 구상이 독자적 개발일까요, 아니면 남쪽과 과거에 했던 대로 공동 개발·운영을 하겠다는 것일까요?
“일단 달라진 상황을 보면, 북한은 동해안 지역에 일종의 광역관광지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원산 갈마지구가 내년 상반기 완공될 예정이고 마식령 스키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운영하고 있고요. 최근 양덕군에 온천단지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게 금강산까지 다 연결돼 있습니다. 북한이 큰 틀에서 관광전략을 세워서 접근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금강산에 한정해서 얘기해 보면, 금강산은 남북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고 우리 민족 차원의 의미가 큰 산입니다. 정주영 현대 회장이 처음 금강산 관광에 합의했을 때도 금강산의 이런 특성을 중시했던 거고요. 지금도 그런 합의 정신은 유효합니다.”
― 북한의 ‘금강산 시설 철거’ 통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창의적 해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해법을 관철할 실행력인데요?
“그렇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공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인데, 북핵 문제라든가 제재라든가 하는 여러 사정 때문에 남북관계의 공간이 축소돼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현재의 정세나 향후 정세 변화를 고려해볼 때 저는 남북관계에 (독자적인) 공간이 있다고 봅니다. 남북이 협의를 통해 다양한 방안들을 논의할 수 있고, 지금 상황에서 실현 가능한 해법이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실현 가능한 방안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금강산만 한정해서 보자면, 금강산은 세개의 공간이 함께 있습니다. 관광의 공간, 이산가족 만남의 공간, 사회문화 교류의 공간입니다. 사회문화 교류는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도 꾸준히 이어져 왔습니다. 이산가족 만남의 공간도 중요합니다. 정부는 면회소를 전면 수리해서 이산가족 상봉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관광을 보면, 개별관광은 제재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개별관광은 남북이 협의를 하면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그런데 개별관광도 실제론 안 되고 있지 않습니까?
“아까도 얘기했지만, 지난해 9·19 정상회담 합의와 올해 북한 신년사 발표 이후 남북 협의가 이뤄졌다면 지금쯤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하노이 회담 이후에 남북 당국 간에 협의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남북이 협의한다면 가능합니다. 중요한 것은 신변 안전 보장인데, 개별관광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풀어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 앞에서도 나왔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남쪽 관광객은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예, 그 문제는 남북이 언제든지 논의를 할 수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도 원산 갈마지구를 완공하면 안정적으로 관광객을 모으는 게 중요해집니다. 그런데 동해안이 접근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며칠 전 평양의 외교 사절을 만났는데, ‘지난주에 평양에서 금강산을 갔는데 버스로 8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동쪽 관광지대가 성공하려면 남북관계 활용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9·19 공동선언에서 동해관광특구를 남북이 공동으로 개발해보자 한 것 아니겠습니까? 남쪽도 고성부터 설악산까지 관광지역이므로 남북이 연결되면 서로 이득을 볼 수 있죠. 중국 관광객이 북한으로 들어가서 설악산으로 온다든가, 설악산을 거쳐 원산 갈마로 간다든가 하는 교차방문·연계방문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 근본으로 돌아가서 보면 대북 제재의 틀이 유지되는 한, 금강산 관광도 개성공단도 전면 재개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현행 제재의 틀을 우회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얼마 전 김홍걸 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미국 눈치 보지 말고 먼저 질러보는 배짱도 필요하다”는 말도 했는데요?
“제재라는 것은 일종의 국제적인 규범입니다. 중국도 러시아도 다 지킵니다. 우리도 국제규범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만 제재라는 것은 목적이 있고 대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예외조항도 있습니다. 제재 상황에서도 가능한 영역이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창의적 해법’이라고 한 것은 그만큼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기술적으로 검토해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 그중 하나가 개별관광이라는 것이죠?
“예, 개별관광도 포함됩니다.”
― 하지만 남북이 금강산 시설 문제에 합의를 해서 개보수나 재건축을 하자고 하더라도, 남쪽에서 자재나 자본이 들어가려고 하면 국제 제재에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정부가 창의적 해법을 모색한다고 했을 때, 당연히 실무적으로 그런 문제와 관련해 적절한 절차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제가 지난 4월 취임하고 나서 결정적으로 한가지 바꾼 것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남북 간에 먼저 협의하고 난 뒤 합의 사항을 가지고 제재 면제를 신청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시차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힘들게 복잡한 절차를 통과했는데 남북 간에 불신이 증폭돼 실행되지 못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남북 간에 협력을 해야 할 분야가 있으므로 우선순위에 따라서 먼저 제재 면제 절차를 밟고, 뒤에 남북 간에 협의를 하자고 순서를 바꿨습니다. 그동안 남북관계 경색 국면이 길어졌는데, 그사이에 제재 면제 절차를 밟은 것들이 꽤 축적이 돼 있습니다. 남북관계가 풀리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이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장관실에서 고명섭 논설위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 북-미 관계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한 대로 올해 말 안에 타협이 이뤄져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느냐입니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비관적인 전망도 만만찮은데요.
“북핵 협상은 쉬운 협상이 아닙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서 정상회담 했던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북-미 간에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북·미 모두 정상 간 신뢰를 유지하고 있고 이 기회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시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과거 북핵 협상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시간에 대한 자기중심적 이해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도 미국도 ‘결국 시간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기회를 놓쳤는데, 그런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찾아야 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협상의 구조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불투명성이 커집니다. 협상의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 만약 올 연말까지 북-미 간 타협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고 내년에 북한이 새로운 길을 선택해 인공위성 발사 같은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그땐 북-미 관계는 정말 파탄에 가까운 상황에 처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남북관계도 거기에 연동돼서 지금보다 훨씬 더 안 좋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남·북·미 모두 특단의 각오가 있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 공감합니다. 2020년 한반도 정세를 예측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앞으로 두달 남았는데, 우리가 모든 노력을 다해 2020년도의 불확실성을 극복할 방안을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북-미 협상의 진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북-미 관계에 따라 남북관계가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북관계 자체의 중요성도 굉장히 크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남북관계라는 이 공간을 더 넓혀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로 남북관계 공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인식이 남-북-미 관계의 선순환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가 서로 보완관계에 있을 때 한반도는 앞으로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관계를 묶어놓고 북-미 양자 관계가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북한도 미국도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michael@hani.co.kr
통일문제·남북관계 연구해온 전문가
“취임 뒤, 분단 극복에 필요한 준비 많이 했다”
김연철 장관은 통일 문제, 남북관계 전문가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2018년 통일연구원 원장에 임명됐고 지난 4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지난해 펴낸 <70년의 대화>에서 김 장관은 남북관계를 풀려면 남쪽이 먼저 움직이는 ‘능동적 접근’, 한반도를 넘어 넓은 시야로 보는 ‘포괄적 접근’, 북핵 문제의 기원과 구조를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역사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남북관계에서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런 만큼 통일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통일부의 역할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리라는 기대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아서 김 장관이 취임한 뒤에 남북관계는 오히려 더 후퇴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에서는 ‘장관이 축사만 하고 다닌다’는 말도 나왔다. 김 장관은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대북 관련 단체나 지자체 같은 ‘정책 고객’을 활발히 만나는 것은 기본 임무에 속한다고 말했다. 취임한 뒤로 ‘민관협력을 제도화하고 이산가족 상봉, 남북 도시 교류를 비롯해 분단 극복에 필요한 많은 일들을 준비해왔다’고 강조했다. 다만 남북관계 경색이 길어지다 보니 준비한 걸 보여주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