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개장을 앞둔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장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텔레비전>이 지난 31일 보도했다. 군사 행보에 집중했던 김 위원장이 경제시찰에 나선 것은 넉달여 만이다. 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을 비난하며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북-미의 실무협상을 위한 ‘접점’ 찾기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 부상은 지난 31일 본인 명의로 담화를 내어, 폼페이오 장관이 27일(현지시각) 미국 재향군인회 주최 행사 연설에서 “우리는 북한의 불량 행동(rogue behavior)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 발언을 비판했다. 최 부상은 “폼페오(폼페이오)의 이번 발언은 도를 넘었으며 예정되여 있는 조미(북-미) 실무협상 개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며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했다.
최 부상이 언급한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북-미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북한이 취한 조처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추가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중단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달 하순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74차 유엔총회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불참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유엔총회의 일반토의 기조연설자로 리 외무상이 아닌 대사급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총회를 계기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됐던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리 외무상의 고위급 회담도 무산되는 셈이다.
북한은 핵 문제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이의 정상회담에서 논의하길 원하고 있으며, 제재 문제 등에서 강경한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역할에 부정적이다. 지난 23일 리 외무상이 폼페이오 장관의 “강력한 대북 제재” 발언을 문제 삼아 ‘독초’라고 비난하는 담화를 낸 지 8일 만에 이번 최 부상의 담화가 나왔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가 지연되는 가운데 미 재무부는 지난 30일(현지시각) 북한과의 불법 환적에 연루된 대만인 2명과 대만·홍콩 해운사 3곳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다. 미 재무부는 기존 제재의 이행 차원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북-미 양쪽의 비핵화 개념과 로드맵에 대한 견해차가 크고 신뢰가 부족하다는 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실무협상 자체가 무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부 당국자는 “최 부상의 담화가 협상 재개에 좋은 신호는 분명 아니지만, 북-미 실무협상의 판이 깨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실무협상 재개에 시간이 오래 걸릴지, 아니면 북-미가 곧 실무협상을 하기 위해 협상력을 키우기 위한 기싸움에 들어간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관세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북한도 회담을 깨겠다는 것은 아니며, 미국에 북한을 대화 상대로 진지하게 인정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해야 협상에서도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촉구하는 것”이라며 “미국 관리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멈추고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일정도 북-미 협상 재개의 변수가 될 전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2~4일 방북하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중재 역할을 할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며 “북-미가 기싸움은 하고 있지만 미국 대선 일정 등을 고려해 올해 안에 3차 정상회담을 해야 할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실무협상이 9월 초순께 열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3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고리 마르굴로프 러시아 외교부 차관과 만나 한-러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할 예정이다.
박민희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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