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 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 오른쪽)이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수행원들과 함께 만찬을 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처음 만났다. 25일 오후 2시5분(현지시각),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 에스(S)동 입구에서 두 정상은 미소 띤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맞아줘서 영광”이라고 화답했다. 북-러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한 것은 2011년 이후 8년 만이고,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한 뒤 7년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김 위원장보다 30여분 먼저 도착해 회담장 정문 앞까지 나와 김 위원장을 맞았다. 김 위원장은 회담장에서 100m 정도 떨어진 호텔에서 벤츠 전용차량을 타고 이동했다. 평소 전용차를 둘러싼 채 함께 뛰어가곤 했던 ‘방탄경호단’은 등장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차에서 내려 러시아 육해공군 의장대가 도열한 가운데 붉은 카펫 위로 걸어 들어왔다.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역에서 검은 롱코트에 중절모를 쓰고 등장했던 모습과 달리 이날은 평소 즐겨 입는 어두운 색깔의 인민복 차림이었다.
두 정상은 회담장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환하게 웃으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두 정상은 통역자만 배석하는 단독회담을 시작하기 직전 러시아 언론 등 취재진 앞에서 함께 발언했고, 이 상황 역시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됐다.
오후 2시를 넘겨 시작된 두 지도자의 단독회담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두 정상이 다시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오후 4시가 다 돼서였다. 러시아 현지 언론은 “두 정상이 단독회담을 50분 정도 한 뒤 곧바로 각료들이 함께 하는 확대회담을 할 예정이었지만, 두 정상의 대화가 예상보다 훨씬 길어졌다”고 보도했다. 매우 긴밀한 대화가 오갔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날 양국 각료들이 함께 한 확대정상회담을 포함해 3시간 넘게 회담을 한 뒤 오후 5시30분께 만찬 테이블에 앉은 김 위원장은 “나는 오늘 푸틴 대통령 각하와 조로(북-러) 친선 관계 발전과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안전 보장을 위한 문제들, 그리고 공동의 국제적 문제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에 있어서 적극적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힘을 합치면 산도 옮길 수 있다’는 북한 속담을 언급하며 “국제사회와 모든 이해당사국 간에 한반도에서는 영구적 평화구축과 평화 번영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처음으로 만난 두 정상은 단독회담·확대정상회담과 공연 관람과 만찬까지 5시간 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또 두 정상의 첫 만남, 단독회담과 확대정상회담을 시작하며 한 모두 발언, 만찬사까지 두 정상의 육성을 모두 <로시야24> 등 러시아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이날 두 정상은 선물로 ‘검’을 주고받았다. 푸틴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동전을 쥐여주며 그 의미를 설명해주기도 했다. 그는 “우리 풍습에 따라서 칼을 들 때는 악의를 품지 않았다는 뜻에서 (상대에게) 돈을 주게 돼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이 25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마찬에 앞서 검을 선물로 주고받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AFP 연합뉴스
회담장 근처에는 두 정상을 보려는 취재진과 학생, 시민들이 몰려들었는데, 극동연방대에 재학 중인 북한 남학생 여럿이 김 위원장을 보기 위해 몇시간 동안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블라디보스토크/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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