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26일 이라크의 알아사드공군기지를 방문해 현지에 주둔하는 미군 지위관들의 브리핑을 받고 있다. 트럼프가 전쟁지역에 주둔하는 미군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아사드공군기지/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동맹국들을 향해 해외 주둔 미군에 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을 명시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진행 중인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인 25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국외 파병 미군 장병들과 화상대화를 하면서 “우리가 불이익을 당하면서 부자 나라들에 보조금을 지급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의 경찰이 될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도 우리를 도와야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전세계 많은 매우 부유한 국가의 군대에 상당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는 무역에서 미국과 우리 납세자를 완전히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매티스 장군은 이것을 문제로 보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문제로 보고 고치고 있다”고 밝혀, 사퇴하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있었음을 공개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 등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지목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그가 강조하는 ‘비용 계산’에 기초한 전세계 동맹 재조정의 틀 안에서 한국, 일본, 유럽 동맹국들의 방위비 대폭 증액을 목표로, 한국을 첫 본보기로 삼으려는 모양새다. 특히 내년 일본과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 한국과의 협상 결과를 전례로 삼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한국뿐 아니라 일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여러 유럽 국가를 모두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발언 등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방위비 대폭 증액 압박을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한-미 협상팀은 내년부터 적용될 10차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올해 10차례 협상한 끝에 총액에 대한 이견을 거의 좁혔지만, 미국 본국에서 “훈령”이 내려와 그동안의 합의가 무효가 되고 협상이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복수의 소식통이 전했다. 올해 한국의 분담금은 9602억원인데, 미국 쪽은 50% 정도의 인상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 협상이 실무진을 떠나 외교장관 또는 정상 간 합의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에서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나 ‘주한미군 철수’, 북핵 문제와 연결시켜 압박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미국은 우리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45%를 부담한다고 하지만, 직간접 비용을 계산하면 실제로는 한국이 70% 이상을 내고 있다”며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대폭 인상 요구나 일부에서 나오는 근거 없는 주한미군 철수 불안 등에 끌려가지 말고 차분히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희 김지은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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