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훈령조작 사건’의 당사자였던 이동복 당시 안기부 특보가 2008년 11월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 자격으로 한 고등학교에서 국가관 특강을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1992년 9월16일 평양에서 열린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 둘째 날 아침 남쪽의 대표단은 서울에서 온 뜻밖의 훈령을 받았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북한이 요구하는 ‘이인모 건’에 대해 3개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지 않으면 합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 회담에 앞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남북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 문제를 받드시 실현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당시 북쪽 고향으로 자신을 보내달라는 남쪽의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씨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대표단은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과 판문점 면회소 설치만 북쪽이 응하면 이인모씨를 송환한다는 협상전략을 대통령으로부터 재가받았다. 그런데 당시 대표단 대변인인 국가안전기획부 특보 이동복은 납북된 동진호 어부들의 송환도 추가하는 협상전술을 관철시켰다. 북한이 동진호 어부 송환을 받아들이면 좋고, 안 된다면 앞서 두 가지 조건으로 합의하자는 것이었다.
고위급회담 첫날 북한은 의외로 타협적인 자세로 나와서, 애초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던 교류협력·군사·정치 3개 분과 모두에서 부속합의서가 일괄타결됐다. 북한은 또 이인모씨만 송환하면 이산가족 방문과 면회소 설치도 수용하겠다고 합의해줬다. 남으로서는 모든 협상전략 조건이 충족된 큰 성공이었다.
대표단은 이런 합의를 알리며 최종 승인을 해달라는 ‘청훈’(외국에 나가 있는 대사·공사·사절 등이 본국 정부에 집무에 관한 명령이나 지시를 청함)을 보냈는데, 그다음날 서울에서 애초에 ‘버리는 카드’였던 동진호 어부 송환이 관철 안 되면 이산가족 상봉도 합의하지 말라는 훈령이 온 것이다. 이는 대통령이 승인했던 협상 조건을 뒤집는 것이었으나, 대표단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 협상을 결렬시키고 서울로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단이 서울에 오자 놀라운 일이 드러났다. 최영철 당시 통일부 장관이 대통령의 특별지시 사항인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반드시 합의해 발표하고 오라”는 훈령까지 재차 보냈다며, 왜 합의를 못했냐고 추궁했다. 대표단으로서는 자신들이 접한 훈령과는 정반대의 내용이었다.
조사 결과, 대표단이 처음 보낸 청훈에 이어 이동복이 엄삼탁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에게 보낸 전문이 있었다. 이 전문의 내용은 “청훈 전문을 묵살하고, 이인모 건에 대해 3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협의하지 말라는 전문을 보내라”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문제의 그 가짜 훈령이 왔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정해진 협상전략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을 합의하라’는 정식 훈령이 나중에 왔지만, 정원식 대표에게는 전해지지도 않았다.
이 사건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1993년 11월 국회에서 이부영 당시 의원이 폭로하고, 감사원의 감사가 진행돼 전모가 드러났다. ‘청훈 차단’ ‘가짜 훈령 조작’ ‘진짜 훈령 묵살’ 등 총체적인 훈령 조작 사건이었다. 하지만 실행자인 이동복만 사표를 받는 선에서 끝나, 그 배후는 드러나지 않았다.
남북 관계와 협상에서 남쪽의 보수진영이 제일 우선시하고 대통령이 특별지시까지 내린 이산가족 상봉 합의를 뒤엎은 이유는 무엇일까? 남쪽의 대북 강경파들은 당시 합의된 역사적인 남북기본합의서나 북방외교에 ‘주적이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노골적으로 저항했다.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뒤부터 그 후속조처 실행을 위한 남북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보수언론들은 북의 핵개발이 완전폐기되지 않으면, 남북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여론몰이를 했다. 북한의 개방파 테크노크라트인 김달현 부총리가 서울을 방문해 대우가 추진하던 남포경공업합작단지 승인 등 남북경협을 요구했으나, 남쪽은 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때 남북경협이 본격화됐다면, 북한 역시 개방으로 더 다가갔을 것이다.
곧 한국은 대통령 선거 정국에 본격 돌입했고, 노태우 대통령은 레임덕 상태로 들어갔다. 대선에 앞서 보수진영에 유리하도록 남북관계 긴장 조성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지시까지 무시하는 훈령 조작이 일어난 배경이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지금 우리에게 ‘제2의 이동복’은 없는가?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속도감 있게 북한과 관계 개선을 결실 맺지 못한다면, 제2의 이동복은 또 출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