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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특별기고] 한반도 갈등의 역사 끝낼 절호의 기회다

등록 2018-03-07 17:40수정 2018-03-07 19:45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특별기고
12년 만의 대통령 대북특사가 대결의 질곡에 빠진 한반도 역사를 평화의 길로 되돌릴 희망의 선물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다. 특사단은 북핵 상황의 악화로 한치 앞도 점치기 어려운 한반도 위기 상황을 남과 북이 협력해 기회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중대한 성과를 거두었다. 전운이 감도는 정세로 인해 흥행조차 어려워 보였던 평창겨울올림픽을 오히려 한반도 평화 실현의 마중물로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와 전략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암흑과 희망의 갈림길에서 평화와 공영의 미래에 더 관심을 보인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에 대해서도 평가가 인색할 이유가 없다. 취임 뒤 북핵 문제를 외교 1순위로 놓고 북한과 거친 공방을 벌여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특사단 활동에 대한 후한 평가는 이번 성과가 정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대북특사단의 최대 성과는 북-미 대화의 조건 실현과 4월말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일 것이다. 먼저 특사단은 그동안 군사적 충돌 이외에는 출구가 보이지 않던 북핵문제에서 생산적인 북-미 대화를 이끌 중요한 단서들을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이끌어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적어도 4가지 점에서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

①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조건부 비핵화 용의 ② 비핵화를 위한 허심탄회한 북-미 대화 용의 ③ 대화 중 추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 전략 도발 중단 ④ 4월 예정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이해 표시.

이 정도의 입장 변화라면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조건부 비핵화 용의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있을 수 있으나,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리(公理)이기에 그것은 검토 가능한 내용이다. 그리고 김정은이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관련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밝힌 대목은 북한이 북-미 대화의 최대 걸림돌로 인식해온 장애물을 스스로 제거한 것으로서 그들의 대화 의지를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대표 오찬 간담회에 참석,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낮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대표 오찬 간담회에 참석,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던 4월말 조기 정상회담 개최 합의도 중대한 성과다. 문 대통령이 북쪽의 조기 정상회담 제안을 수용한 것은 이번 특사단이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 조성한 일련의 여건을 이른 시기에 확실하게 정착시켜 평화 국면을 개척해 가겠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평소에 정상회담 실현을 위해서는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며 성급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일부에서는 이 점을 들어서 4월 정상회담에 대해 문제를 지적할 수 있으나, 이미 특사가 만들어 온 성과들이 3, 4월 중에 북-미 대화를 실현시킬 가능성이 높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파고도 쉽게 넘길 것으로 보여 그의 공언과 모순되는 상황은 발생할 것 같지 않다.

특히 판문점 남쪽 구역인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북한의 지도자가 남한 구역인 평화의 집에 내려와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지난 1, 2차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개최된 점을 고려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장소로 판문점을 선택한 것은 경호 문제나 회담 일정이 촉박한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 그러나 판문점 정상회담의 진정한 의미는 남북 정상이 긴박한 정세를 타개하기 위해 번잡한 형식을 내던지고 내용으로 담판을 짓겠다는 의지를 보인 데 있다. 4월말 우리는 남북의 정상이 의장대 사열도, 요란스러운 환송 행렬도 없이 서류가방만 들고 참모들을 대동하고 평화의 집에서 만나 현안과 민족의 미래를 두고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는 실무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 대통령이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어 조기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회담 성과에 웬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대북특사 파견을 통해서 이미 여건 조성의 바탕을 마련했다. 여기에 김정은과의 간접대화를 통해 그와 북핵문제를 두고 합리적 담판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동안 김정은과 만난 외국 정상은 아무도 없다. 김정은은 2011년 12월에 집권한 이래 6년여 동안 한차례의 정상회담도 치르지 않았다. 사정이 이런 만큼 4월말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는 매우 크다.

한편 ‘남과 북이 군사적 긴장 완화와 긴밀한 협의를 위해 정상 간 핫라인을 설치하고,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첫 통화를 실시하기로 한 점’도 남북관계의 전환기적 변화의 가능성을 담은 중요한 합의다. 이 합의로 청와대 문 대통령 집무실과 조선노동당사 김정은 위원장 집무실 간 직통전화가 개설된다. 이는 혹여 남북 사이에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할 경우 정상 간 직접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필요하면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중재를 위해 김 위원장에게 곧장 전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 위원장이 추구하는 남북관계가 그의 선대와 달리 대결 국면이 종식된 국제 표준에 준하는 정상적인 관계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부는 정상 간 핫라인을 적극 활용해 현재의 남북 군사적 대결 상태를 남북 간 선린관계로 바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과 면담·만찬한 약 10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 부인인 리설주가 만찬장 앞에서 특사단과 악수하는 장면.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6일 오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별사절대표단과 면담·만찬한 약 10분 분량의 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 부인인 리설주가 만찬장 앞에서 특사단과 악수하는 장면. 연합뉴스
그렇다면 앞으로 북핵문제를 진전시키고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는 길에서 무엇을 유의해야 하나? 먼저 남북정상회담이 4월말 열리는 것을 고려해 늦어도 4월 중순까지는 북-미 대화를 실현시킬 필요가 있다. 이미 미국이 특사단을 통해 북한의 입장 변화를 확인했기 때문에 대화에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4월 실시 예정인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 김 위원장이 이해를 표시했기 때문에 사실상 3, 4월 북-미 대화 진행의 걸림돌은 제거된 상황이다. 그러나 북-미 대화의 재개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북-미 대화가 실현되고 나면 곧장 6자회담 복원을 서둘러야 한다. 북-미 대화는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축이지만 양자 간 불신이 너무 커서 외부 협력이 없는 북-미 대화가 안정적으로 가동되기 어려우며, 양자 간 타결 가능성도 낮다. 더욱이 합의해도 이행이 불투명하다. 따라서 주변에서 지속적으로 양쪽을 중재하고 북-미 대화를 생산적으로 견인할 더 큰 틀이 필요하다. 북-미 대화를 보완할 6자회담 복원이 필요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미국 등 주변국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북핵문제 진전과 정상회담 실현을 위한 긍정적 외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과거 6자회담에서 발휘된 중국의 중재자 역할의 회복을 요청하고, 이를 도울 필요가 있다. 또 북-미 대화에 부정적인 일본을 설득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견인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이번 기회에 정부가 일본 정부에 북-일 관계 진전을 위한 협상을 권유하고 필요하면 북-일 사이 협상을 중재해야 한다.

4월말 정상회담의 원만한 실현을 위한 첫째 조건은 북-미 대화다. 그러나 이밖에도 정부는 조기 정상회담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대국민 설명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북쪽이 어느 정도 양해한 한-미 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미국과 협의해 이 훈련을 연기하거나 축소할 수 있다면,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김정은 설득은 그만큼 힘을 갖게 될 것이다.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이종석 전 통일부장관. 한겨레 자료사진
한반도 평화 국면을 확실하게 다져 나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로 보아 4월말 정상회담에서 그는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진전의 일대 전기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특히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진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해 유엔이 대북제재를 재검토해야 할 수준의 중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평화가 오고 남북공동번영을 지향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말 남북정상회담이 과연 이런 획기적 성과를 이룰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정부는 정부대로 철저하게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전문가들은 지혜를 모아 정부에 제안하고, 시민이 성원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결국 정부와 국민이 힘을 모은다면 한반도에서 갈등의 역사를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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