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에서 대통령 특사로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맨 왼쪽은 서훈 국정원장. 청와대 제공
남북이 4월 말 판문점에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열기로 전격 합의했다. 큰 돌발변수가 없다면 2000년 6월 1차, 2007년 10월 2차 정상회담 뒤 10년6개월 만에 마주 앉게 된다. 평창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만들어진 ‘기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남과 북이 ‘한반도 냉전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한 대장정에 함께 나서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으로 평양을 다녀온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6일 저녁 내놓은 ‘특사 방북 결과 언론발표문’의 내용은 파격적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특사로 방남했던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지난달 10일 문 대통령을 만나 김 위원장의 방북 초청 의사를 전달한 지 한달도 되지 않아, 두 정상의 조기 정상회담이 합의된 것이다.
정 실장은 “남북정상회담을 재개하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에 있어서 매우 긍정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로 가급적 조기에 개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남북 공통의 입장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 대해 상당히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의 시점을 ‘4월말’로 못박은 점은 여러모로 주목할 만하다. 김 부부장의 방북 초청에 당시 문 대통령은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키자”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서라도 조속한 북-미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단 문 대통령은 이번 남쪽 특사단 접견에서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북-미 대화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을 ‘정상회담 여건’이 조성된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남북이 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해 일단 4월말로 정한 것”이라며 “특정 일자는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4월 정상회담 합의에는 또 ‘비핵화 의제’를 북-미 대화의 전제로 제시해온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삼겠다는 전략적 판단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북-미 대화가 실질적인 결실이 있을 경우 4월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더욱 급속하게 진전시키면 된다. 만약 북-미 대화가 예상 밖의 난관에 직면할 경우,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의 4월 정상회담에서 직접 담판을 통해 다시 한번 북-미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할 수도 있다.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 장소로 ‘판문점 평화의집’을 선택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정전협정이 체결됐던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킬 만큼 상징성이 크다. 더욱이 ‘평화의집’은 판문점의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어쨌든 김 위원장이 ‘방남’하는 모양새를 취한 셈이다. 이는 앞선 두차례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린 것을 두고 남쪽 내부에서 논란이 있었던 것을 의식한 북쪽의 배려로 보인다. 정 실장은 “지난 두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며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이다. 제3차 정상회담은 판문점 남측 구역인 평화의집에서 한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말했다. 평화의집은 유엔군사령부 관할지역으로 민간인 출입도 통제되는 구역이어서, 경호 측면에서도 양쪽이 안심할 수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조기 정상회담 합의와 핫라인 설치 합의는 남북이 적대관계를 더이상 유지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볼 수 있다”며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를 위한 첫걸음을 외부적 힘이 아닌 당사자인 남북한이 직접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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