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기전 무언가 생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이 다시 도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6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29일엔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앞두고 북-미 간 ‘말의 전쟁’이 고조되면서 불거졌던 ‘한반도 위기론’이 다시 고개를 들 기세다. 전문가들은 “북의 선제적 행동과 그에 따른 즉자적 대응이 이어지면서, 마치 ‘시시포스의 신화’처럼 위기국면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큰 틀의 정책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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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 수위 차근차근 끌어올리는 북한 북한이 이날 오전 발사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약 2700㎞를 날아가 북태평양에 떨어졌다. 이는 인민군 총참모부가 지난 8일 언급한 ‘태평양작전전구 미군 발진기지 전면타격’ 능력을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이 공언한 다음 단계는 ‘괌도 포위사격’이다. 북한이 지난 5월14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화성-12’형의 사거리는 4천~6천㎞로, 괌을 타격권 안에 둔 것으로 평가된다.
앞서 지난 26일 오전 북한이 발사한 단거리 미사일(사거리 250㎞) 3발에 대해 정부는 ‘저강도 도발’로 규정했다. 미국 쪽에서 대북 유화 제스처가 나오자, 북한도 ‘수위 조절’을 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사거리 250㎞짜리 단거리 미사일은 서울과 3군 통합 기지가 있는 계룡대는 물론 평택과 대구 미군기지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이는 총참모부가 밝힌 ‘남반부 종심 타격’용 무력시위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북한이 보여준 일련의 도발은 지난 8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서 밝힌 대로 ‘우리 식의 선제타격’ 방안에 따라 위협 수위를 점차 높여가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북한은 △서울 및 남반부 전 종심 동시타격 △태평양작전전구 미제 발진기지 전면타격을 제시했다. 9일엔 김낙겸 북 전략군사령관이 직접 나서 ‘괌도 포위사격’을 들먹였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북한은 기존에 공언한 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이 괌 포위사격을 실시하면 미국이 보복공격에 나설 텐데, 서울과 도쿄를 인질 삼아 ‘이래도 보복공격을 할 테냐’고 노골적으로 미국을 위협한 셈”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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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과 대응, 악순환 끊어야 북한이 다시 위기감을 끌어올리는 이유는 명확해 보인다. 북한은 그간 대화 가능성이 높아질 때마다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위협 수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이른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왔다. 문제는 북이 또다시 ‘전략도발’에 나서면서,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대화가 아닌 추가 대북제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점이다. 지난 20여년 되풀이해온 악순환이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29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핵·미사일 개발을 향한 결심과 능력을 확인한 것”이라며 “가능한 (제재) 수단을 사실상 모두 소진한 미·중·한 등 관련국들이 매우 곤경에 처했다”고 짚었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전직 핵심 당국자는 “중요한 건 우리 정부의 입장인데, 예견된 것들이 나왔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매뉴얼이 없어 즉흥적으로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결국 우리 스스로 위기감을 높이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북한은 핵 억지력을 완성시키겠다는 전략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그에 따라 북이 행동하면 우리는 단순히 반응하는 답답한 행태가 끝없이 되풀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강조하는 것처럼 ‘우리가 주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행동을 취하고 북한이 반응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북한의 공격에 맞서 수비에만 급급할 게 아니라, 공수전환을 이루기 위해 과감하게 정책방향을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압박과 제재 국면에선 우리가 절대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없고,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나 당할 수밖에 없다”며 “북의 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압박엔 동참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물밑 접촉을 통한 대화의 계기점을 찾고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유도하는 한편, 한-중·한-러 관계를 통해 두 나라의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촉구하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김지은 기자,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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