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월28일 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대륙간 탄도미사일급 ‘화성-14’형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실시했다고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향해 군사행동을 적시하는 전례없는 ‘말 폭탄’을 떠뜨리고 있다. 특히, 북한이 미국의 태평양 군사기지 본부격인 괌을 대륙간탄도미사일로 폭격하겠다는 위협에 미국의 언론을 포함한 조야는 뜨악한 반응을 보이며, 양쪽의 격돌에 일제히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트럼프의 경고에 북한이 응수 북한의 괌 폭격 위협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세계가 결코 보지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가장 강한 경고 뒤에 즉각 나왔다. 북한은 트럼프의 이런 경고가 있은지 몇시간 뒤에 즉각 괌 기지를 화성-12호 미사일로 포위사격하는 계획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위협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과 실험에 대해 경고하면서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는 정도로 군사행동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암시만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평소와는 달리 준비된 메모를 읽으며 “북한이 더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며 ‘화염과 분노’ 경고 발언을 했다. 그는 북한이 “솔직히 힘에 직면할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이에 북한은 괌을 특정하며 자신들의 군사조처가 가해질 대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북한은 그동안 군사행동을 통한 보복을 다짐하기는 했으나, 구체적인 대상을 특정하지는 않았다. 특히, 북한은 맥 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예방전쟁’의 가능성을 시사한 것을 의식하기도 했다. 총참모부 성명을 통해 ‘예방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응한다’고 경고했다.
■
미 정보당국, 북핵 소형화 달성 평가 양쪽의 말 폭탄이 더욱 거세진 배경은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핵개발이 소형화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이 재진입장치(RV) 능력 확보로 완성단계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8일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에 탑재할 수 있는 소형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는 미 정보 당국의 평가를 보도했다. 신문은 이날 낮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이 지난달 북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기밀평가를 통해 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며, 북한이 ‘완전한 핵보유국’을 향한 도정에서 중대한 문턱을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신문은 “정보 당국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급 미사일에 의한 운반을 포함해, 탄도 미사일 운반체에 적합한 핵무기들을 생산해오고 있다”는 보고서의 문장을 인용했다. 또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를 달성했다는 이러한 미국의 평가는 지난 7월28일자 국방정보국 내부 보고에서 나온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미 공군이 북한의 ‘화성-14’형 발사에 대응해 출격시킨 B-1B 전략폭격기가 7월30일 우리 공군 F-15K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한반도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미국 당국이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엔비시>(NBC) 방송도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는 확인했다.
일본 정부도 8일 발간한 국방백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이 “새로운 국면”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방위성은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은 이미 상당히 진전됐고 북한이 이미 핵무기 소형화를 달성해 핵탄두를 획득했다고 믿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
매케인까지 나서 우려 표명 북한과 미국의 ’말 폭탄’이 전례없는 수준으로 터지자, 미 행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월스트리트저널>에게 워싱턴은 핵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진 북한을 재래식 억지 방안들로 봉쇄할 수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는 북한이 미국의 도시들을 인질로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미 의회의 국방매파인 존 매케인 상원 국방위원장도 애리조나의 한 라디오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무엇을 말하는지 나는 모르겠고 그가 말하는 것을 해석하기를 오래 전에 포기했다”며 “그런 종류의 표현은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나는 모르겠다”고 비판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도 트위터에 트럼프가 강경한 경고에 이어질 정책이나 계획이 없다면, 대통령의 신뢰는 계속 추락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위협이 신뢰할만 하다고 평가될 때에만 핵 억지력은 유효하다”며 “허풍은 우리의 국가안보 태세를 해칠 것이다”고 말했다.
<가디언>은 또 워싱턴의 군축협회 회장인 대릴 킴볼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예방전쟁 시사를 비판했다. 킴볼은 “도널드 트럼프가 북한의 절멸을 위협하는 것은 위험하고, 무모하고, 비생산적이다”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긴장을 완화하고 재앙적인 오산을 피하는 대화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는 현재 분쟁의 길로 있고, 그 출구로 나가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몬트레이에 있는 미들버리국제연구소의 동아시아 비확한 프로그램의 국장 제프리 루이스는 미국이 시사했던 ‘예방전쟁’이 불가능함을 지적했다. 그는 “‘예방’이란 말에는 ‘사전’(before)이라는 뜻이 있다”며 “북한이 핵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진 뒤에 예방전쟁을 시작하면, 이는 오래된 정규 핵전쟁일뿐이다”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의 핵심 부품인 “재진입장치(RV)가 북한의 미사일에서 작동하고 있을까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하지않는다”며 “북한을 그것을 완성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상황이고, 북한은 뉴욕에 핵무기를 날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