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춘영 인도 대사 언론 인터뷰
한미정상회담 앞서 ‘협상카드’ 흘리기
한미정상회담 앞서 ‘협상카드’ 흘리기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도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할 수 있다고 계춘영 인도 주재 북한 대사가 밝혔다. 그는 핵무기 폐기를 전제로 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뜻도 내비쳤다. 계 대사는 리수용 외무상의 측근으로 알려진데다,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미묘한 시점에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계춘영 대사는 21일 인도 위성방송 <위온>에 출연해 “일정한 상황에서 북한은 핵실험이나 미사일 시험발사 동결 조건을 논의할 뜻이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계 대사는 리수용 북한 외무상이 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할 때 차석대사를 지낸 인물이다. 통상 북 외교관이 외신과 인터뷰할 때 본국의 지침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적절한 시점을 골라 간접적으로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방송이 <유튜브>에 올린 해당 인터뷰 영상을 보면, 계 대사는 “미국이 일시적 혹은 영구적으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완전히 중단한다면, 우리도 일시적으로 (핵과 미사일 실험을) 멈추게 될 것이고, 현 상황에 대해 평화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 대사는 이어 “일정한 상황에서, 우리의 요구 조건이 충족된다면 무기 실험의 유예 조건을 놓고 협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더라도 22만㎢밖에 안 되는 작은 한반도 땅에 그런 위험한 무기는 필요하지 않지만, 우리의 존립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고 힘든 선택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한 협상도 가능하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핵·미사일 실험 중단 맞교환을 제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리수용 외무상은 지난해 4월 <에이피>(AP) 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대북 적대시 정책을 폐기하고, 이의 표현으로 조선반도에서의 군사연습, 전쟁연습을 중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면 우리도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이라며, 핵 실험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2015년 1월에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을 임시 중지하면, “우리도 미국이 우려하는 핵 실험을 임시 중지하는 화답 조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쪽은 “북한 당국의 공식 의견이라고 보기 어렵다”면서도 북한의 정확한 의도가 무엇인지 면밀한 탐색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인도 대사 한 사람의 발언만으로 북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북에 현상 타개의 의지와 움직임이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계 대사의 발언은)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서로 간의 신뢰도를 시험해 보는 가장 초보적인 초기 이행조치를 제안한 것”이라며 “협상의 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서로 협상에 임하는 자세를 확인해보자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장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이 적절한 시점을 골라 제안을 던진 것으로 보인다”며 “북쪽의 진의만 확인된다면, 긍정적인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인환 이세영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